한국사 정리 노트 남북국

남북국시대 총정리 — 통일신라의 제도와 발해의 고구려 계승

나당전쟁부터 후삼국 분열까지, 통일신라 200년을 신문왕의 왕권 강화와 9세기 호족의 등장이라는 두 축으로 정리했습니다. 발해가 고구려를 이었다는 근거와 시험에 나오는 관제 비교도 함께 담았습니다.

남북국시대는 매 회 4~6문항이 나옵니다. 그런데 체감 난도는 삼국시대보다 높습니다. 왕 이름이 비슷하고(신문왕·성덕왕·경덕왕·원성왕), 제도 이름이 낯설기 때문입니다(관료전·정전·독서삼품과·9주 5소경).

이 시대를 잡는 요령은 두 개의 봉우리와 하나의 내리막으로 보는 것입니다.

7세기 통일  →  8세기 전성기(신문왕~경덕왕)  →  9세기 붕괴(호족·농민봉기)  →  후삼국

통일 과정 — 나당동맹에서 나당전쟁까지

먼저 순서만 정확히 잡습니다. 시험은 사건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묻는 형태로 자주 나옵니다.

연도 사건
645 안시성 싸움 (고구려가 당을 격퇴)
648 나당동맹 체결
660 백제 멸망 (황산벌 전투, 계백 vs 김유신)
663 백강 전투 (백제 부흥군 + 왜 vs 나당연합)
668 고구려 멸망
670~ 고구려 부흥운동 (검모잠 · 안승)
675 매소성 전투
676 기벌포 전투 → 나당전쟁 승리, 삼국 통일

여기서 매소성·기벌포가 결정적입니다. 이 두 낱말이 보이면 나당전쟁이고, 통일이 완성되는 지점입니다.

부흥운동도 자주 나옵니다. 백제는 복신·도침(주류성)흑치상지(임존성), 고구려는 검모잠이 안승을 받들어 일으켰습니다.

놓치기 쉬운 포인트: 백제 부흥운동은 백강 전투(663) 로, 고구려 부흥운동은 나당전쟁과 맞물려 끝납니다. "나당전쟁 이전의 사실"을 묻는 문항에서 이 순서가 갈림길이 됩니다.

신문왕 — 이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왕

통일신라 문항의 절반 가까이가 신문왕입니다. 왕권을 최대로 끌어올린 왕이고, 그가 한 일은 전부 귀족의 힘을 빼는 방향으로 일관됩니다.

  • 김흠돌의 난 진압 — 장인이 일으킨 반란을 계기로 진골 귀족을 대거 숙청합니다.
  •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 — 이게 핵심입니다. 녹읍은 토지의 세금뿐 아니라 그 땅의 사람까지 부릴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관료전은 세금(조)만 받습니다. 귀족의 경제 기반을 끊은 조치입니다.
  • 국학 설립 — 유학 교육으로 왕에게 충성할 관료를 기릅니다.
  • 9주 5소경 정비 — 지방 통치 체계를 완성합니다.
  • 9서당 10정 — 중앙군에 고구려·백제·말갈인까지 편입해 민족 융합을 꾀했습니다.
  • 달구벌(대구) 천도 시도 — 실패했지만 귀족 견제 의도를 보여줍니다.

이 가운데 녹읍 폐지는 반드시 짝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문왕이 없앤 녹읍은 경덕왕 때 부활합니다. 귀족이 다시 힘을 얻었다는 신호이고, 신라 쇠퇴의 출발점으로 출제됩니다.

토지 제도
신문왕 관료전 지급 → 녹읍 폐지
성덕왕 정전 지급 (백성에게)
경덕왕 녹읍 부활

8세기 이후 — 무너지는 과정

  • 원성왕 — 독서삼품과. 유교 경전 이해 수준으로 관리를 뽑으려 한 시도입니다. 진골 귀족의 반발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 9세기 왕위 다툼 — 150여 년 동안 20명 가까운 왕이 바뀝니다. 김헌창의 난(822), 장보고의 난이 이 혼란을 보여줍니다.
  • 장보고 —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해 해상 무역을 장악했습니다. 시험에서는 '청해진' 하나로 확정됩니다.
  • 원종·애노의 난(889) — 진성여왕 때 세금을 견디지 못한 농민이 봉기합니다. 전국적 농민 봉기의 시작이자 신라 붕괴의 결정적 장면입니다.

이 틈에 지방에서 호족이 자립합니다. 성을 쌓고 군사를 거느리며 스스로 성주·장군이라 칭했습니다. 여기에 6두품 지식인이 합류합니다. 골품제 때문에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올라갈 수 없었던 이들입니다. 최치원이 진성여왕에게 올린 시무 10여 조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일이 그 상징입니다.

사상에서도 변화가 나타납니다. 선종풍수지리설(도선)이 호족의 사상적 근거가 됩니다. 경전보다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은 기존 교종 질서를 부정했고, 풍수지리설은 "경주만이 중심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제공했습니다.

발해 — 고구려를 이었다는 근거

발해는 고구려 계승을 묻는 문제로 거의 고정 출제됩니다. 근거 네 가지를 묶어 두세요.

  •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를 '고려(고구려) 국왕' 이라 칭했습니다.
  • 온돌, 굴식 돌방무덤, 모줄임천장 등 고구려식 문화 요소가 나타납니다.
  • 지배층 다수가 고구려계였습니다.
  • 정혜공주 묘(굴식 돌방무덤·모줄임천장)가 고구려 양식입니다. 반면 정효공주 묘는 벽돌무덤으로 당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이 대비가 자주 출제됩니다.

주요 왕도 세 명만 정리하면 됩니다.

업적
무왕 연호 인안. 장문휴를 보내 당의 산둥(등주) 을 공격
문왕 연호 대흥. 당과 친선, 신라도 개설, 상경 천도
선왕 연호 건흥. 최대 영토, '해동성국' 이라 불림. 5경 15부 62주 정비

발해는 926년 거란에 멸망합니다.

통일신라와 발해의 제도 비교

구분 통일신라 발해
중앙 집사부(시중) 중심 14부 3성 6부 (정당성 중심, 대내상)
지방 9주 5소경 5경 15부 62주
군사 9서당 10정 10위
교육 국학 주자감
감찰 사정부 중정대

발해의 3성 6부는 당의 제도를 들여왔지만 6부의 이름을 유교 덕목(충·인·의·지·예·신)으로 바꿔 쓴 독자성이 있습니다. 이 점이 선지로 나옵니다.

여기서 틀립니다

선지 실제 주인공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였다 신문왕
정전을 지급하였다 성덕왕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원성왕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장보고(흥덕왕 때)
시무 10여 조를 올렸다 최치원
장문휴가 등주를 공격하였다 발해 무왕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발해 선왕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다 백제 무령왕
사출도를 두었다 부여

이렇게 연습하세요

이 구간은 왕과 제도를 짝으로 외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신문왕-관료전, 성덕왕-정전, 경덕왕-녹읍 부활, 원성왕-독서삼품과. 이 네 줄만 정확하면 통일신라 문항의 상당수가 정리됩니다.

앞뒤 흐름은 삼국시대 전성기 정리고려시대 정리로 이어집니다. 전체 요약은 시대별 요약 정리, 실전 감각은 기출 문제풀이에서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