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 구석기 · 신석기
약 70만 년 전 ~ 기원전 2000년경
한반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구석기부터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까지. 이 시기에는 기록이 없어 유물·유적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정치정치 · 사회 구조
구석기 시대 (약 70만 년 전 ~)
- 무리 사회: 가족 단위의 작은 집단이 함께 이동하며 생활.
- 평등 사회: 계급이나 지배자가 없고, 경험 많은 연장자가 무리를 이끄는 정도.
- 이동 생활: 사냥감과 식물을 따라 옮겨 다님 → 정착하지 않음.
- 주거: 동굴(공주 석장리, 단양 수양개), 막집·바위 그늘에서 거주.
- 대표 유적: 연천 전곡리(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발견), 공주 석장리, 청원 두루봉 동굴(흥수아이).
신석기 시대 (기원전 8000년경 ~)
- 씨족 사회 · 부족 사회 형성: 혈연 중심의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룸.
- 여전히 평등 사회: 사유 재산·계급은 없었음.
- 정착 생활 시작: 강가·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거주(원형·방형 움집, 중앙에 화덕).
- 족외혼(다른 씨족과의 혼인)을 통해 부족 사회로 확대.
- 공동 생산 · 공동 분배의 원시 공동체 사회.
- 대표 유적: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조개무지), 양양 오산리, 제주 고산리.
경제경제 · 생활
구석기 — 채집 · 사냥 경제
- 채집과 사냥, 어로로 식량 획득. 농경은 아직 없음.
- 뗀석기(타제석기) 사용: 큰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
- 전기 구석기: 주먹도끼(만능 도구), 찍개 등 큰 석기.
- 중기 구석기: 격지(돌조각)를 다듬어 만든 긁개·밀개·찌르개 등 작은 석기.
- 후기 구석기: 슴베찌르개(이음도구), 좀돌날 사용 — 정교한 도구 제작.
- 뼈로 만든 골각기 사용. 불 사용으로 음식 조리.
신석기 — 농경 · 목축의 시작 (신석기 혁명)
- 농경 시작(밭농사 중심): 조·피·수수 등 잡곡 재배. 황해도 봉산 지탑리, 평양 남경 유적에서 탄화된 좁쌀 출토.
- 원시적 목축 시작: 가축 사육 초보 단계.
- 여전히 채집·사냥·어로가 큰 비중을 차지.
- 간석기(마제석기) 사용: 돌을 갈아 만든 정교한 도구. 돌괭이·돌낫·돌삽·갈돌·갈판.
- 토기 제작 → 음식 저장·조리 가능. 이른민무늬토기, 덧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대표).
- 가락바퀴(방추차)·뼈바늘 사용 → 원시적 수공업(옷·그물 제작).
- 조개무지(패총)에서 어로 활동 흔적: 부산 동삼동 패총.
사회사회 · 신앙
신석기의 원시 신앙
- 애니미즘(Animism): 자연물(태양·물·바위 등)에 영혼이 있다고 믿음.
- 토테미즘(Totemism): 특정 동식물(곰·호랑이 등)을 부족의 수호신으로 숭배.
- 샤머니즘(Shamanism): 무당(샤먼)이 인간과 영혼 세계를 연결.
- 조상·영혼 숭배: 죽은 자를 매장하고 영혼이 산다고 믿음.
- 예술품: 조개껍데기 가면(부산 동삼동), 치레걸이, 흙으로 빚은 얼굴상 등 — 신앙·미의식의 표현.
문화문화 · 유물
대표 유물 · 유적 정리
- 구석기 — 뗀석기 중심: 주먹도끼, 찍개, 슴베찌르개, 좀돌날몸돌.
- 구석기 대표 유적: 연천 전곡리(아슐리안형 주먹도끼), 공주 석장리, 단양 금굴·수양개, 청원 두루봉(흥수아이).
- 신석기 — 간석기 + 토기 + 가락바퀴.
- 신석기 토기 발전 순서: 이른민무늬 → 덧무늬 → 빗살무늬 → 평저(밑이 평평한 토기).
- 빗살무늬토기: 한반도 신석기를 대표하는 토기, 밑이 뾰족한 V자형으로 강가·해안에 꽂아 사용.
- 신석기 대표 유적: 서울 암사동(빗살무늬토기·움집), 부산 동삼동(패총·조개가면), 양양 오산리, 제주 고산리(국내 최고(最古) 신석기 유적).
- 원시 예술: 짐승·물고기를 새긴 조각, 치레걸이(목걸이·팔찌) — 종교·심미적 표현.
청동기 · 철기 시대 — 고조선과 여러 나라
기원전 2000년경 ~ 기원전후
농경 발달과 함께 사유재산·계급이 생기고, 군장(족장)이 등장.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 고조선이 세워지고, 만주·한반도 여러 나라(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가 성장한다.
정치정치 · 국가의 형성
청동기 사회 — 계급의 출현
- 사유 재산 · 계급 발생: 농경 생산력 증대로 잉여 산물 축적 → 빈부 격차.
- 군장(족장)의 등장: 부족 내 지배자 출현. 정복 전쟁으로 부족 통합.
- 선민사상 형성: '하늘의 자손'으로 자신을 신성화 → 지배 정당성 확보.
- 고인돌(지석묘): 거대한 무덤으로 군장의 권력을 상징(수십~수백 명의 노동력 동원).
- 마을 규모 확대: 구릉지에 환호(도랑)·목책으로 둘러싼 마을 출현 — 전쟁 빈발.
고조선 (기원전 2333 ~ 기원전 108)
- 단군 신화: 환인-환웅-단군왕검 → 제정일치 사회(단군=제사장, 왕검=정치지도자).
- 건국: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건국 —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
- 영역: 비파형 동검 · 미송리식 토기 · 북방식 고인돌의 분포로 추정(만주·요동·한반도 북부).
- 기원전 4세기: 연(燕)과 대립할 정도로 성장 → 왕(王) 칭호 사용(부왕·준왕).
- 위만 조선 (기원전 194 ~ 108):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즉위. 철기 문화 본격 수용.
- 중계 무역으로 번성 → 한(漢)과 대립.
- 8조법 중 3개 조항 전함(한서 지리지): 살인·상해·절도에 대한 처벌 → 생명·노동력·사유재산 중시, 계급 사회 확인.
- 멸망: 기원전 108년 한 무제의 침입으로 멸망 → 한 군현(낙랑·진번·임둔·현도) 설치.
철기 시대 여러 나라의 정치
- 부여: 5부족 연맹(중앙 왕 + 4출도: 마가·우가·저가·구가). 왕권 미약 — 흉년 시 왕에게 책임.
- 고구려: 5부족 연맹(소노부·계루부 등). 제가회의(귀족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 결정.
- 옥저 · 동예: 왕이 없고 군장(읍군·삼로)이 통치하는 소규모 군장 국가.
- 삼한(마한 54국·진한 12국·변한 12국): 신지·읍차 등 군장이 다스림. 마한의 목지국이 삼한 전체를 주도.
- 제정 분리: 천군(제사장)이 소도(신성 지역)에서 제사 — 군장의 권한이 미치지 못함.
경제경제 · 산업
청동기 — 농경 발달
- 농경 본격화: 밭농사(조·보리·콩·수수) 중심.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 시작.
- 농기구는 여전히 간석기 사용(반달돌칼로 이삭 수확, 바퀴날 도끼).
- 청동기는 무기·제사용·장신구로 사용 — 농기구로는 사용 X(귀중한 자원).
- 비파형 동검 · 거친무늬 거울 · 청동 방울 등 의식용 도구 제작.
- 민무늬토기 · 미송리식 토기 · 붉은 간토기 사용.
- 주거: 직사각형 움집(지상가옥에 가까워짐), 화덕은 한쪽 벽으로 이동.
철기 — 농업 혁명
- 철제 농기구 보급: 깊은 갈이 가능 → 농업 생산력 비약적 발전.
- 철제 무기 사용 → 부족 간 정복 전쟁 격화.
- 벼농사 확산. 잉여 농산물 축적으로 계급 분화 심화.
- 중국과 활발한 교역: 명도전·반량전·오수전 등 중국 화폐 출토 → 교역 증거.
- 창원 다호리 유적의 붓: 한자 사용 증거.
- 독자적 청동기 발달: 세형동검(한국식 동검), 잔무늬 거울, 거푸집(석범) — 한반도 자체 제작 증거.
여러 나라의 경제
- 부여: 농경·목축(말·주옥·모피 특산). 반농반목.
- 고구려: 산악 지대로 농토 부족 → 약탈 경제. 부경(작은 창고)에 약탈물 보관.
- 옥저: 어물·소금 등 해산물 풍부. 토지 비옥.
- 동예: 단궁(활)·과하마(작은 말)·반어피(바다표범 가죽) 특산.
- 삼한: 벼농사 발달(저수지 多 — 김제 벽골제 등). 변한은 철 생산 → 낙랑·왜에 수출.
사회사회 · 풍속
여러 나라의 사회 풍속
- 부여 — 1책 12법(도둑질 시 12배 배상), 형사취수제(형 죽으면 형수와 결혼), 순장.
- 부여 — 우제점법(소굽으로 길흉 점침), 영고(12월 제천행사).
- 고구려 — 서옥제(데릴사위제): 신랑이 처가의 서옥에 살며 자식 낳고 자란 뒤 본가로.
- 고구려 — 동맹(10월 제천행사), 1책 12법, 제가회의.
- 옥저 — 민며느리제(어린 신부를 데려와 키운 뒤 결혼), 가족공동무덤(골장제).
- 동예 — 책화(다른 부족 영역 침범 시 노비·소·말로 배상), 족외혼 엄수, 무천(10월 제천행사).
- 삼한 — 5월 수릿날 · 10월 계절제(농경 의례), 두레(공동 노동 조직), 소도(신성 지역).
- 공통점: 대부분 제천행사를 통해 추수감사와 부족 단결을 도모.
문화문화 · 유물
청동기 · 철기 대표 유물
- 청동기 유물: 비파형 동검(요령식), 거친무늬 거울, 반달돌칼, 민무늬·미송리식 토기.
- 고인돌: 군장의 무덤. 북방식(탁자식)·남방식(바둑판식)으로 구분. 강화·고창·화순 고인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돌무지무덤·돌널무덤도 청동기 시대 무덤.
- 철기 유물: 세형동검(한국식), 잔무늬 거울, 거푸집 — 한반도 독자적 청동기 제작 증거.
- 철기 유적: 창원 다호리(붓·철기·중국 화폐), 경남 의창 다호리.
- 암각화(바위그림): 울주 반구대 암각화(고래·사슴 등 동물 — 사냥·다산 기원), 고령 양전동(동심원·기하학 무늬 — 태양 숭배).
- 이 시기 청동기는 의식·지배 도구, 철기는 실용 도구로 역할 분리.
삼국시대 —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기원전 1세기 ~ 7세기
고구려 · 백제 · 신라 삼국이 정복 전쟁을 통해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한 시기. 백제 → 고구려 → 신라 순서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가야는 연맹 단계에 머무름.
정치정치 — 삼국의 발전과 전성기
고구려
- 건국: 기원전 37년 주몽이 졸본에서 건국. 이후 국내성(유리왕) → 평양(장수왕)으로 천도.
- 태조왕(1세기 후반): 옥저 정복, 계루부 고씨의 왕위 세습 확립.
- 고국천왕(2세기): 부족적 5부 → 행정적 5부로 개편. 진대법 시행(을파소 건의 — 빈민 구제 춘대추납).
- 미천왕(4세기 초): 서안평 점령, 낙랑군·대방군 축출 — 한반도 내 한 군현 종식.
- 고국원왕: 백제 근초고왕의 공격으로 평양성에서 전사 → 위기.
- 소수림왕(4세기 후반): 불교 수용(전진 순도, 372), 태학 설립, 율령 반포 — 중앙집권 체제 정비.
- 광개토대왕(5세기 초): 만주 대부분과 한강 이북 차지. 신라에 침입한 왜 격퇴(400) → 호우명 그릇. '영락' 연호 사용.
- 장수왕(5세기): 평양 천도(427), 남진 정책. 백제 한성 함락(475) → 백제 개로왕 전사.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 고구려 전성기: 5세기 광개토대왕~장수왕 — 한반도 중부까지 차지.
- 6세기 후반 ~ 7세기: 수·당과 대립. 살수대첩(612, 을지문덕), 안시성 전투(645, 양만춘). 668년 멸망.
백제
- 건국: 기원전 18년 온조가 위례성(한강 유역)에 건국. 고구려 유민 + 한강 토착세력.
- 고이왕(3세기): 한강 유역 완전 장악. 6좌평·16관등제 정비, 관복 제정. 율령 반포.
- 근초고왕(4세기): 백제 전성기. 마한 정복(전라도 일대), 고구려 평양성 공격 → 고국원왕 전사. 일본에 칠지도 전수. '서기' 편찬(고흥).
- 침류왕(4세기): 불교 수용(동진 마라난타, 384).
- 비유왕: 신라와 나제동맹 체결(433, 눌지왕과).
- 5세기 위기: 장수왕의 남진으로 한성 함락(475) → 개로왕 전사 → 웅진(공주) 천도.
- 동성왕: 신라와 결혼 동맹(493, 소지왕과).
- 무령왕(6세기 초): 22담로 설치(지방 통제 강화), 중국 남조와 활발한 교류. 무령왕릉(벽돌무덤).
- 성왕(6세기 중): 사비(부여) 천도(538), 국호 '남부여'. 신라 진흥왕과 한강 하류 일시 회복했으나 진흥왕의 배신으로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554).
- 백제 멸망: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 함락. 의자왕 항복.
신라
- 건국: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사로국(경주)에서 건국. 박·석·김씨 교대 왕위 → 김씨 세습.
- 내물마립간(4세기): 김씨 왕위 세습 확립. '마립간(대군장)' 칭호 사용. 광개토대왕의 도움으로 왜 격퇴.
- 눌지마립간: 부자 왕위 세습. 나제동맹 체결(433).
- 지증왕(6세기 초): 국호 '신라', 왕호 '왕' 사용. 우산국(울릉도) 정복(이사부, 512). 우경 시작, 동시전 설치.
- 법흥왕(6세기 초): 율령 반포(520), 17관등·골품제 정비, 병부 설치. 불교 공인(이차돈 순교, 527). 금관가야 정복(532). '건원' 연호.
- 진흥왕(6세기 중): 신라 전성기. 한강 유역 완전 장악(553) — 백제와 동맹 깨고. 대가야 정복(562). 4개의 순수비(북한산·창녕·황초령·마운령) + 단양 적성비. 화랑도 국가 조직화. 거칠부의 '국사' 편찬.
- 선덕여왕(7세기): 첨성대, 황룡사 9층 목탑, 분황사 모전석탑.
- 진덕여왕: 김춘추의 외교로 나당동맹 성립(648).
- 태종무열왕(김춘추): 최초의 진골 출신 왕. 백제 멸망(660).
- 문무왕: 고구려 멸망(668), 삼국 통일 완수(676, 나당전쟁 승리 — 매소성·기벌포 전투).
가야
- 낙동강 하류 변한 지역에서 6가야 연맹체 형성.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함.
- 전기 가야 연맹: 금관가야(김해) 중심 — 시조 김수로왕.
- 금관가야는 풍부한 철과 해상 교역으로 번성, 일본·낙랑에 철 수출.
- 광개토대왕의 신라 구원 공격(400)으로 금관가야 쇠퇴.
- 후기 가야 연맹: 대가야(고령) 중심 — 시조 이진아시왕.
- 532년 금관가야 신라 법흥왕에게 멸망 → 김유신의 증조부 구해왕 항복.
- 562년 대가야 신라 진흥왕에게 멸망 → 가야 완전 소멸.
- 가야는 백제·신라의 압박과 연맹 한계로 통일 국가로 발전 X.
경제경제 · 토지 제도
삼국의 경제 정책
- 농업 중심: 철제 농기구 보급, 우경 보급(지증왕 6세기 — 신라).
- 수취 제도: 조세(곡물)·공물(특산물)·역(노동력)을 농민에게 부과.
- 농민 부담: 자영농 + 귀족의 사적 지배. 빈민은 노비·예속민으로 전락.
- 진대법(고구려 고국천왕): 가난한 농민에게 봄에 곡식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한 빈민 구제 제도 — 후대 사창·상평창의 원형.
- 토지 제도: 왕이 귀족·관리에게 식읍·녹읍 지급 → 농민으로부터 조세·노동력 수취 권한.
- 수공업: 관청 수공업 중심. 무기·장신구·비단 등 제작.
- 상업: 신라 지증왕 — 동시(東市) 설치, 동시전이 감독. 시장 발달.
- 대외 무역: 고구려는 중국 남북조와, 백제는 남조·왜와, 신라는 처음에는 고구려·백제를 통하다 한강 확보 후 직접 당과 교역.
- 당항성(신라 한강 하류) — 당으로 가는 무역항.
사회사회 — 신분과 골품제
삼국 공통의 신분 사회
- 엄격한 신분제 사회: 귀족 · 평민 · 천민으로 구분.
- 귀족은 율령에 따라 관등·관복·식읍 등 특권 누림.
- 고구려 — 제가회의(귀족 회의), 평민에게 가혹한 법(1책 12법, 도둑은 12배 배상).
- 백제 — 정사암 회의(귀족이 재상 선출). 8성 귀족(사·연·해·진·국·목·백·협).
- 백제 율령: 절도 시 유배 + 2배 배상, 부녀 간음 시 노비.
신라의 골품제와 화랑도
- 골품제(骨品制): 신라 특유의 폐쇄적 신분제. 골(骨)과 두품(頭品)으로 구성.
- 성골(왕족 최고) · 진골(왕족) · 6두품·5두품·4두품·3두품·2두품·1두품.
- 성골은 진덕여왕을 끝으로 단절 → 무열왕부터 진골 왕.
- 6두품: 학문·종교에서 활약했으나 정치적 한계(아찬까지만 승진). 후에 호족·반신라 세력으로.
- 골품에 따라 관등·관직·집·수레·옷색까지 제한.
- 화백 회의: 진골 귀족 회의. 만장일치제. 상대등(귀족 대표)이 주관.
- 화랑도: 진흥왕 때 국가 조직화. 화랑(진골 청년) + 낭도(다양한 신분).
- 원광의 세속 5계: 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살생유택 — 화랑의 행동 규범.
문화문화 — 불교 · 학문 · 유물
불교의 수용과 발전
- 고구려: 소수림왕(372), 전진 순도가 전래. 왕권 강화·중앙집권의 사상적 기반.
- 백제: 침류왕(384), 동진 마라난타가 전래.
- 신라: 법흥왕(527),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 가장 늦게 수용.
- 왕즉불(王卽佛) 사상: 왕이 곧 부처 → 왕권 신성화.
- 신라 불교의 토착화: 미륵 신앙 + 화랑도 결합.
- 원광(세속 5계), 자장(황룡사 9층탑 건립 건의) 등 고승.
학문 · 역사서
- 한자 수용 → 유학 교육 시작.
- 고구려: 태학(소수림왕, 372 — 중앙 귀족 자제 교육), 경당(장수왕 평양 천도 후 — 지방 평민 교육, 한학+무술).
- 백제: 5경 박사·의박사·역박사 — 일본에 학문 전파(왕인, 아직기).
- 신라: 임신서기석 — 청년들이 유교 경전 학습 맹세.
- 역사서: 고구려 '유기' 100권 → 영양왕 때 이문진이 '신집' 5권으로 요약. 백제 '서기'(근초고왕, 고흥). 신라 '국사'(진흥왕, 거칠부).
건축 · 미술 · 무덤
- 고구려 무덤: 초기 돌무지무덤(장군총) → 후기 굴식돌방무덤(사신도 등 벽화). 강서대묘 사신도.
- 백제 무덤: 한성기 돌무지무덤(석촌동 — 고구려 영향). 웅진기 굴식돌방무덤·벽돌무덤(무령왕릉 — 중국 남조 양식).
- 신라 무덤: 돌무지덧널무덤(천마총·황남대총) — 도굴이 어려워 부장품 풍부. 통일 후 굴식돌방무덤으로 변화.
- 고구려 벽화: 무용총(수렵도), 각저총(씨름), 강서대묘(사신도) — 도교·생활상 반영.
- 탑: 백제 익산 미륵사지 석탑(현존 최고 석탑),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자장 건의, 몽골 침입 때 소실), 분황사 모전석탑.
- 불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삼국 공통) — 일본 고류사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흡사.
- 백제 금동대향로: 도교·불교 사상이 결합된 백제 미술의 정수.
일본에 끼친 영향
- 백제 — 일본 고대 문화에 가장 큰 영향. 아직기(한자), 왕인(천자문·논어), 노리사치계(불경·불상), 관륵(천문·역법).
- 고구려 — 담징(종이·먹·맷돌 전수, 호류사 금당벽화), 혜자(쇼토쿠 태자 스승), 혜관(삼론종 전파).
- 신라 — 조선술·축제술 전수(한인의 연못).
- 가야 — 토기 제작 기술 전수(스에키 토기에 영향).
- 결과: 일본 아스카 문화 형성에 결정적 기여.
남북국시대 — 통일신라와 발해
676년 ~ 935년 (신라) / 698년 ~ 926년 (발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만주에서는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 남쪽 통일신라와 북쪽 발해가 공존한 시기로, 통일신라는 8세기 전성기 후 9세기 말 호족·농민 봉기로 후삼국으로 분열된다.
정치정치 — 왕권 강화와 동요
삼국 통일 과정
- 나당 동맹(648): 김춘추가 당 태종과 체결. 대동강 이남 신라, 이북 당.
- 백제 멸망(660): 황산벌 전투(계백 vs 김유신), 사비성 함락. 의자왕 항복.
- 고구려 멸망(668): 연개소문 사후 내분 → 평양성 함락.
- 나당 전쟁(670~676): 당이 한반도 전체 지배 야욕 → 신라가 축출. 매소성 전투(675), 기벌포 전투(676).
- 통일 완수(676): 문무왕, 대동강~원산만 이남 차지. 한계 — 만주 상실, 외세 이용.
- 의의: 우리 민족 최초의 통일. 고구려·백제 유민을 9서당에 편성하여 융합.
통일신라의 정치 발전
- 무열왕(김춘추): 최초 진골 왕. 이후 무열왕계 진골이 왕위 세습.
- 문무왕: 통일 완성. 외사정 파견(지방관 감찰).
- 신문왕(7세기 후반): 전제 왕권의 절정. 김흠돌의 난 진압 → 진골 귀족 숙청. 국학 설립(682), 9주 5소경 정비, 9서당 10정 군사 조직. 관료전 지급, 녹읍 폐지 → 귀족 경제 기반 약화.
- 성덕왕: 정전(丁田) 지급(722) — 농민에게 토지 분급, 국가 재정 확충.
- 경덕왕: 한화 정책(관직명·지명 중국식 개칭). 녹읍 부활(757) → 귀족 세력 다시 강화.
- 혜공왕: 96각간의 난(768) → 무열왕계 단절. 이후 내물왕계 진골이 왕위 다툼.
- 원성왕: 독서삼품과 시행(788) — 유교 경전 시험으로 관리 등용. 골품제 한계로 성공 X.
- 9세기 — 진골 귀족의 왕위 쟁탈전 격화: 150여 년간 20여 명의 왕 교체.
- 호족 등장 — 지방 군사·경제 실권자. 6두품과 결합하여 반신라 세력화.
- 농민 봉기 — 진성여왕 때 원종·애노의 난(889, 사벌주). 적고적의 난.
- 후삼국 형성: 견훤의 후백제(900, 완산주), 궁예의 후고구려(901, 송악).
발해의 정치 발전
- 건국(698): 대조영이 동모산(길림 돈화)에서 건국. 고구려 유민 + 말갈인.
- 당은 발해를 인정하고 '발해군왕'으로 책봉.
- 고구려 계승 의식 —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국왕' 자칭, 문화 양식 고구려식.
- 무왕(2대): 영토 확장. 당 산둥반도(등주) 공격(장문휴, 732). 일본과 외교 시작. '인안' 연호.
- 문왕(3대): 당과 친선·문물 수용. 수도 상경 용천부로 천도. 신라도(신라와 교역로) 개설. '대흥' 연호.
- 선왕(9세기 초): 발해 전성기. '해동성국(海東盛國)' 칭호 — 당이 부름. 5경 15부 62주 정비. '건흥' 연호.
- 멸망: 926년 거란(요)에 의해 멸망. 거란이 동란국 설치. 발해 유민 일부 고려로 망명(왕건이 동족 의식으로 수용).
경제경제 — 토지 제도와 교역
통일신라의 경제 제도
- 녹읍·식읍: 관료·왕족이 농민의 조세·노동력·공물까지 수취.
- 신문왕 관료전(687): 조세만 수취 가능 → 귀족 경제 기반 약화. 녹읍 폐지(689).
- 성덕왕 정전(722): 일반 농민에게 토지 분급, 국가가 직접 수취.
- 경덕왕 녹읍 부활(757): 귀족 세력 회복 → 농민 부담 가중.
- 민정문서(신라장적): 통일신라 촌락 문서. 일본 도다이지 쇼소인에서 발견. 인구·가호·전답·소·말·뽕나무·잣나무 등을 3년마다 조사 → 수취 자료.
- 수공업: 관청에 공장부 설치, 직조·도자기·금속 제품 생산. 청동·은제품 발달.
- 상업: 동시·서시·남시(효소왕) 3개의 시전. 시전감이 감독.
- 대외 무역: 당·일본·아라비아와 활발. 울산항이 국제 무역항(아라비아 상인 왕래).
- 당과 무역: 견·은·인삼 수출, 비단·서적 수입. 산둥반도에 신라방·신라소·신라관·신라원 형성.
- 장보고: 청해진(완도) 설치(828) — 해적 소탕, 당·일본·신라 삼각 무역 장악. 후에 왕위 쟁탈전 개입하다 암살(841).
발해의 경제
- 주요 산업 — 농업(밭농사 중심, 일부 벼농사), 목축(솔빈부의 말 유명), 수렵, 어업.
- 수공업 — 금속 가공, 직물, 도자기, 유리 제품 발달.
- 교역 — 당·일본·신라·거란과 활발한 무역.
- 교역품: 발해는 모피·인삼·말·자기 수출, 비단·책 수입.
- 특히 솔빈부의 말은 당으로 수출되는 명품.
- 당과 무역 — 산둥반도에 발해관 설치. 신라도·일본도·거란도·영주도·조공도 등 5개 주요 교역로.
사회사회 — 신분과 동요
통일신라 사회
- 골품제 유지 — 진골 중심. 6두품은 학문·종교에서 두각.
- 6두품의 활약: 강수(외교 문서), 설총(이두 정리, 화왕계), 최치원(시무 10여 조) — 후에 호족과 결합하여 새 사회 건설 추구.
- 9서당 10정: 9서당(중앙군)에 고구려·백제 유민, 말갈인 등 포함 → 민족 융합.
- 9주 5소경: 5소경에 옛 가야·고구려·백제 귀족 사민 → 지방 견제 + 균형 발전.
- 8세기 말 ~ 9세기 사회 동요: 진골 귀족 사치, 농민 몰락(노비·초적), 호족·6두품의 반신라 결합.
- 선종과 결합한 호족 — 9산 선문, 지방 사상 기반.
발해 사회
- 이중적 사회 — 지배층: 고구려계(왕족 대씨·귀족 고씨), 피지배층: 다수의 말갈인.
- 고구려 유민이 상층, 말갈인은 하층 — 다만 일부 말갈인은 발해 관리로 진출.
- 정혜공주·정효공주 묘: 발해 왕실 묘. 고구려식 굴식돌방무덤(정혜) + 당 영향(정효 벽돌무덤).
- 발해 사회의 융합 — 고구려 문화 기반 + 말갈 풍습 + 당 문화 수용.
문화문화 — 불교 · 학문 · 예술
통일신라 불교의 발전
- 원효 — '대승기신론소', '십문화쟁론'. 일심·화쟁 사상으로 종파 통합. '무애가' 부르며 정토 신앙(나무아미타불)을 대중화.
- 의상 — 화엄종 개창, '화엄일승법계도'. '일즉다 다즉일' 사상. 부석사·낙산사 창건. 관음 신앙 확산.
- 혜초 — '왕오천축국전' 저술. 인도·중앙아시아 순례 기록 (둔황에서 발견).
- 원측 — 당에서 활동, 유식학 발전.
- 선종 수용(9세기): 참선과 깨달음 중시. 호족·6두품과 결합. 9산 선문 성립(예: 가지산 보림사).
- 선종의 특징: 교종(경전 중심)과 대립. 개인의 깨달음 강조 → 호족의 사상적 기반.
- 승탑(부도)·탑비 유행 — 선종 영향. 쌍봉사 철감선사 승탑.
통일신라 예술
- 불국사·석굴암(경덕왕, 김대성 발원): 통일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석탑: 감은사지 3층 석탑(통일신라 초기, 신문왕),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무영탑) — '무구정광대다라니경'(현존 세계 최고 목판 인쇄물) 발견. 다보탑.
- 범종: 상원사 종(가장 오래된 종, 725),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771).
- 조형미 — 균형·조화·세련미가 절정.
- 글씨: 김생(해동의 서성), 요극일.
- 그림: 솔거(황룡사 노송도).
유학 · 학문
- 국학(신문왕, 682): 유교 경전 중심 교육. 경덕왕 때 태학감으로 개칭.
- 독서삼품과(원성왕, 788): 유교 경전 시험으로 관리 등용. 골품제 벽으로 한계.
- 강수: 외교 문서 작성 능통. '청방인문표' 작성.
- 설총: 이두 정리, '화왕계'로 왕에게 충언.
- 최치원: 6두품, 당 빈공과 급제. '계원필경'(현존 최고 개인 문집). '시무 10여 조' 진성여왕에게 올렸으나 수용 X. 후에 가야산 은거. '토황소격문'으로 당에서 명성.
발해 문화 — 고구려 + 당 + 말갈
- 고구려 계승: 석등(웅장), 이불병좌상, 굴식돌방무덤(정혜공주묘 — 모줄임 천장은 고구려 양식), 온돌 흔적.
- 당 문화 수용: 상경 용천부 — 당 장안성을 모방한 주작대로 등 계획 도시. 3성 6부제(명칭은 독자적: 정당성·선조성·중대성).
- 유학: 주자감(국립 대학) 설립. 6부 명칭에 충·인·의·지·예·신 사용 → 유교 이념.
- 당 빈공과에 발해인 다수 합격 — 신라와 경쟁(쟁장 사건).
- 불교 — 왕실·귀족 중심으로 번성. 상경에서 발견된 석등·이불병좌상 등.
- 독자성 — 영가(永嘉)·인안·대흥·건흥 등 독자 연호 사용.
고려시대
918년 ~ 1392년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세운 고려는 호족 연합 정권으로 출발해 광종·성종 때 중앙집권을 확립. 무신정권·몽골 침입·원 간섭기를 거치며 권문세족·신진사대부의 갈등 끝에 멸망한다.
정치정치 — 건국부터 멸망까지
고려의 건국과 통일
- 후삼국 형성: 견훤의 후백제(900, 완산주) — 호남·충남 일대. 궁예의 후고구려/마진/태봉(901, 송악→철원) — 강원·경기·황해.
- 왕건: 궁예의 부하로 활약(나주 점령). 궁예의 폭정에 신하들이 추대하여 즉위(918) → 국호 '고려', 연호 '천수', 수도 송악.
- 공산 전투(927): 견훤이 신라 경애왕 살해 → 왕건 구원 가다 대구 공산에서 패배(신숭겸 전사).
- 고창 전투(930): 안동에서 견훤군 격파 — 전세 역전.
- 신라 경순왕 항복(935): 평화적 합병.
- 후백제 멸망(936): 일리천 전투 — 견훤의 아들 신검을 격파. 후삼국 통일.
초기 — 왕권 강화
- 태조 왕건: 호족 융합 — 결혼 정책(29명의 부인), 사성(賜姓) 정책, 기인 제도(호족 자제 인질), 사심관 제도(호족을 자기 지역 책임자로). 북진 정책(서경 중시, 청천강~영흥만까지 영토 확장). 훈요 10조 — 후대 왕에 대한 유훈. 흑창(빈민 구제).
- 혜종·정종: 왕규의 난, 광군 설치(거란 대비).
- 광종(4대, 949~975): 노비안검법(956) — 불법 노비 해방, 호족 약화. 과거제(958, 쌍기 건의) — 신진 관료 등용. 공복 제정(자·단·비·녹). 칭제건원(황제·광덕·준풍 연호).
- 경종: 시정 전시과 시행(976) — 전·현직 관리에게 토지 지급.
- 성종(6대, 981~997):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 유교 정치 이념 확립. 2성 6부제(중서문하성·상서성), 12목 설치(지방관 파견 시작), 향리제도 정비, 국자감 정비, 의창·상평창 설치.
거란 · 여진 항쟁
- 거란(요)의 1차 침입(993, 성종): 소손녕이 80만 대군. 서희의 외교담판으로 강동 6주 획득 → 압록강까지 영토 확장.
- 거란 2차 침입(1010, 현종):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입. 개경 함락, 현종 나주 피난. 양규의 활약.
- 거란 3차 침입(1018~1019, 현종): 강감찬의 귀주대첩(1019)으로 격퇴. 이후 천리장성 축조(1033~1044) — 압록강~동해안 도련포.
- 초조대장경 조판(현종) — 거란 격퇴 기원.
- 여진과의 관계: 처음 고려에 조공 → 12세기 초 세력 확장. 윤관이 별무반(신기군·신보군·항마군) 조직(1104).
- 동북 9성 개척(1107, 윤관): 1년 만에 여진 요구로 반환.
- 금(여진) 건국(1115) → 군신 관계 요구(1126) → 이자겸이 사대 수용 → 북진 정책 좌절.
문벌귀족 사회와 동요
- 문벌귀족 — 음서(5품 이상 자손은 시험 없이 관직)·공음전(세습 가능 토지) 등 특권. 왕실·귀족 간 폐쇄적 통혼.
- 대표 문벌: 경원 이씨(이자겸), 해주 최씨(최충), 파평 윤씨(윤관), 경주 김씨(김부식).
- 이자겸의 난(1126, 인종): 외척 이자겸이 왕위 찬탈 시도 → 척준경에 의해 진압. 문벌 사회의 모순 폭로.
-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 묘청·정지상 등 서경파가 서경 천도·칭제건원·금국 정벌 주장. 개경파(김부식 등) 반대. 묘청이 국호 '대위', 연호 '천개' 선포 → 김부식이 진압. 신채호는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으로 평가.
- 결과: 서경 세력 몰락, 개경 문벌귀족이 권력 독점 → 무신정변의 배경.
무신정권 시대 (1170 ~ 1270)
- 무신정변(1170): 정중부·이의방·이고가 보현원에서 문신을 살해 → 의종 폐위. 무신의 차별·홀대에 대한 반발.
- 초기 — 무신 간 권력 다툼: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천민 출신).
- 최씨 무신 정권(1196~1258): 최충헌이 이의민 제거 → 4대 60여 년 세습. 봉사 10조 제시. 교정도감 설치(인사·감찰 등 최고 기구).
- 최우 — 정방(인사 행정), 서방(문신 자문), 삼별초(군사 기반) 설치. 강화도 천도(1232).
- 농민·천민 봉기: 망이·망소이의 난(1176, 공주 명학소), 김사미·효심의 난(1193), 만적의 난(1198, 최충헌의 사노 —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 교정도감·정방 등 사적 기구 운영 → 정상적 국정 운영 마비.
몽골 항쟁과 원 간섭기
- 몽골 침입(1231~1259, 총 6차): 1차 — 살리타 침입, 박서의 귀주성 항전. 처인성 전투(1232) — 김윤후가 살리타 사살.
- 최우의 강화 천도(1232): 장기 항쟁 의지. 백성들은 도피·항전.
- 팔만대장경 조판(1236~1251): 대장도감 — 강화도. 부처의 힘으로 몽골 격퇴 기원.
- 충주성 전투 — 김윤후가 노비 문서 불태우며 항전 독려.
- 삼별초의 항쟁(1270~1273): 강화도 → 진도(배중손) → 제주도(김통정). 여몽 연합군에 의해 진압.
- 원 간섭기(1259~1356): 강화 후 개경 환도. 부마국 — 왕이 원 공주와 혼인.
- 관제 격하 — 2성 6부 → 첨의부·4사. 도병마사 → 도평의사사(도당)로 변경, 권력 집중.
- 쌍성총관부(철령 이북), 동녕부(서경), 탐라총관부(제주) 설치 → 영토 일부 상실.
- 정동행성 설치(일본 원정용) → 이후 내정 간섭 기구로 변질. 이문소 등.
- 공녀(처녀 공출), 결혼도감, 매(응방), 환관 요구 등 가혹한 수탈.
- 권문세족 등장 — 친원 세력. 음서·도평의사사 장악, 대농장 소유.
공민왕 개혁과 멸망
- 공민왕(31대, 1351~1374): 반원 자주 개혁.
- 반원 정책: 친원파 기철 일파 숙청,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쌍성총관부 무력 탈환(1356) — 철령 이북 회복(유인우).
- 관제 복구 — 2성 6부제로 환원. 몽골식 풍속 금지(변발·호복).
- 내정 개혁: 정방 폐지(인사권 회복), 전민변정도감 설치(신돈) — 권문세족의 불법 토지·노비 정리.
- 신진사대부 — 성리학·과거 출신, 권문세족과 대립.
- 신흥 무인 — 최영(홍건적·왜구 격퇴), 이성계(여진·왜구 격퇴, 위화도 회군).
- 홍건적·왜구 침입 → 신흥 무인 세력 성장.
- 위화도 회군(1388): 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 → 최영의 요동 정벌 명령 → 이성계가 4불가론 주장하며 위화도에서 회군 → 최영 제거, 우왕 폐위.
- 과전법 시행(1391, 공양왕): 신진사대부의 경제 기반 마련. 권문세족 토지 몰수.
- 조선 건국(1392): 정도전·조준 등 급진 사대부가 이성계 추대.
경제경제 — 전시과와 상공업
토지 제도 — 전시과
- 역분전(태조, 940): 후삼국 통일 공신에게 인품·공로 기준으로 지급.
- 시정 전시과(경종, 976): 전·현직 관리에게 관품 + 인품으로 전지(농경지)·시지(땔감용 임야) 지급.
- 개정 전시과(목종, 998): 관품만 기준 — 18과로 구분. 현직·전직 모두 지급.
- 경정 전시과(문종, 1076):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 무관 차별 완화. 한외과 폐지.
- 공음전: 5품 이상 관리에게 지급, 세습 가능 → 문벌귀족 경제 기반.
- 한인전: 6품 이하 자제 중 관직 없는 자에게.
- 구분전: 하급 관리·군인 유가족 생계 보장.
- 외역전: 향리에게. 군인전: 군인에게(직역 세습).
- 녹과전(원종, 1271): 무신 집권기에 전시과 붕괴 → 경기 8현 토지를 관리에게 다시 지급.
- 농장의 확대 — 후기에 권문세족이 대농장 소유, 토지 제도 문란.
농업 · 산업
- 농업 — 우경·시비법 발달. 2년 3작(밭농사 윤작), 남부 일부에 이앙법(모내기) 시작.
- 농기구 개량, 수리 시설 확충(저수지·제언).
- 이암이 원의 '농상집요' 소개 — 농업 기술 발전 기여.
- 목화 전래(공민왕, 문익점 1363): 의생활 혁신. 사위 정천익이 재배 성공.
- 수공업 — 관청 수공업(관청에 공장 소속), 소(所) 수공업(특수 행정구역에서 금·은·종이·먹·도자기 등 생산), 사원 수공업.
- 후기 — 민간 수공업 발달.
상업 · 화폐 · 무역
- 개경에 시전 설치(경시서가 감독), 지방에 향시.
- 화폐: 건원중보(성종, 996) — 최초의 금속 화폐. 삼한통보·해동통보(숙종) — 의천 건의로 주조. 활구(은병, 숙종) — 입구가 넓은 고가 화폐. 저화(공양왕) — 지폐.
- 그러나 화폐는 널리 유통되지 못함 — 자급자족 경제, 곡식·삼베가 주된 거래 수단.
- 대외 무역: 벽란도(예성강 하구)가 국제 무역항. 송·요·금·일본·아라비아 상인 왕래.
- 송과 교역: 비단·서적·약재·자기 수입 / 인삼·금·은·종이·붓·먹·나전칠기 수출.
- 아라비아 상인 — '고려(Korea)'라는 이름이 서방에 전해짐.
- 원 간섭기 — 원과 활발한 교역, 의주에 만호부 설치.
사회사회 — 신분과 백성
신분 구조
- 귀족: 왕족·문벌귀족. 음서·공음전 등 특권.
- 중류층: 향리(지방 행정 실무), 서리(중앙 하급 관리), 남반(궁중 실무), 군반(직업 군인), 잡류, 역리.
- 양민: 백정(일반 농민, 조선과 의미 다름 — 직역 없는 농민), 상인, 수공업자.
- 특수 행정구역: 향·부곡(농업) — 일반 군현민보다 많은 세금. 소(所) — 금·은·종이·먹·도자기 등 특정 생산물 공납. 거주 이전 X, 신분 상승 어려움.
- 천민: 공노비(관청 소속) · 사노비(개인 소유). 외거노비는 신공만 바치고 독립 생활 가능 → 재산 축적 가능.
- 양천교혼 — 부모 중 한쪽이 천민이면 자녀도 천민(일천즉천).
- 후기 변화 — 무신정권기 신분 변동 활발(천민·노비 봉기). 향·부곡·소가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는 사례 증가.
여성 지위와 가족
- 여성의 지위 비교적 높음 — 호주 가능, 자녀 균분 상속, 호적에 남녀 출생순 기재.
- 여성의 재가(재혼) 자유로움. 재가녀 자식도 차별 없음.
- 사위·외손도 음서 혜택 받음. 사위가 처가에 거주하는 경우 많음(서류부가혼).
- 부모 제사를 자녀가 돌아가며 지냄(윤행). 조선 후기의 가부장제와 다름.
사회 시책 · 풍습
- 흑창(태조) → 의창(성종) — 빈민 구제, 춘대추납.
- 상평창(성종, 993) — 물가 조절. 평시 곡식 매입, 흉년에 매출.
- 동·서 대비원 — 환자 치료·빈민 구휼.
- 혜민국 — 의약 담당.
- 구제도감·구급도감 — 재해 시 임시 기구.
- 제위보(광종) — 기금 운영의 이자로 빈민 구제.
- 향도 — 불교 신앙 공동체. 매향 활동(향나무를 묻어 미륵을 기다림). 후기에는 농민 공동체 조직으로 변화.
문화문화 — 불교 · 학문 · 인쇄술
불교
- 국가 종교로 보호 — 연등회·팔관회(불교+토속신앙 결합) 개최.
- 균여(광종) — 화엄종 중심으로 교종 통합 시도. '보현십원가'(향가).
- 의천(문종 아들, 11세기): 천태종 개창 → 교종 중심으로 선종 통합 시도. '교관겸수' 주장. 송·요·일본 불경 수집해 '신편제종교장총록' 편찬, 흥왕사에 교장도감 설치(속장경 간행).
- 지눌(12세기 후반, 무신집권기): 조계종 개창 → 선종 중심으로 교종 통합. '돈오점수·정혜쌍수' 주장. 수선사 결사(송광사) — 불교계 정화.
- 혜심(지눌 제자): 유불일치설 주장 — 성리학 수용의 사상적 기반.
- 요세: 백련사 결사(만덕사) — 법화 신앙·참회 강조.
- 원 간섭기 — 보우가 임제종(선종)을 받아들임. 불교 부패(농장·노비 보유, 면세).
- 팔관회 — 11월(개경)·10월(서경) 토속신앙 + 불교 결합. 외국 사절·상인 참여 → 국제 행사.
유학과 교육
- 초기 — 자주적 주체적 유학(최승로의 시무 28조).
- 중기 — 보수화.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 — 유교적·사대적 입장, 신라 중심 서술. 현존 최고 역사서. 기전체.
- 최충(11세기): 9재 학당(문헌공도) 설립. 사학 12도 융성 → 관학 위축.
- 관학 진흥책: 예종 — 국자감에 7재(전문 강좌) + 양현고(장학재단). 인종 — 경사 6학 정비, 향교 정비.
- 무신정변 이후 유학 위축 → 원 간섭기 안향이 성리학 전래(1289).
- 이제현 — '역옹패설', '사략'. 만권당(원 수도)에서 활동, 원 학자와 교류.
- 공민왕 — 성균관을 순수 유교 교육 기관으로 개편. 이색·정몽주·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배출.
- 신진사대부 — 성리학 수용. 권문세족·불교 비판. 정도전 '불씨잡변'(불교 비판).
역사서
- 전기 — 7대실록(현존 X), '고금록'.
- 삼국사기(김부식, 1145, 인종): 현존 최고 정사. 기전체. 유교 사관, 신라 계승 의식.
- 후기 — 자주 의식 강화.
- 각훈 '해동고승전'(13세기 초): 삼국시대 승려들의 전기.
- 이규보 '동명왕편'(1193, 명종): 고구려 동명왕(주몽) 영웅 서사시. 고구려 계승 의식.
- 일연 '삼국유사'(충렬왕, 1281): 단군신화 최초 수록. 불교사 중심, 설화·전설·향가 포함.
- 이승휴 '제왕운기'(충렬왕, 1287): 단군 ~ 충렬왕까지 한국사 + 중국사. 단군을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 이제현 '사략'(공민왕 — 현존 X): 성리학적 유교사관.
인쇄술 · 과학
- 초조대장경(현종 ~ 선종): 거란 격퇴 기원. 대구 부인사 보관 → 몽골 침입 때 소실.
- 교장(의천): 송·요·일본 불경 주석서. 흥왕사 교장도감. 몽골 침입 때 소실.
-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 고종 1236~1251): 몽골 격퇴 기원. 강화도 대장도감·진주 분사도감. 현재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보관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금속활자: 상정고금예문(1234, 인종) —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기록만 전함).
- 직지심체요절(직지, 1377, 우왕): 청주 흥덕사.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병인양요 때 약탈)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천문 — 사천대(서운관)에서 천문·역법 담당.
- 역법 — 충선왕 때 원의 수시력 도입.
- 의학 — 향약구급방(13세기) — 현존 최고 의서. 우리나라 약재 사용.
- 화약 무기 — 최무선이 화통도감 설치(1377), 화약·화포 제작. 진포 대첩(1380) — 왜구 격퇴.
예술 · 건축
- 고려 청자: 11세기 순청자 → 12세기 상감청자(독창적 기법 — 무늬 새기고 다른 색 흙 메움) → 원 간섭기에 분청사기로 변화.
- 건축 — 주심포 양식(공포가 기둥 위에만): 안동 봉정사 극락전(현존 최고 목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배흘림 기둥 — 유명), 예산 수덕사 대웅전.
- 다포 양식(공포가 기둥+기둥 사이에도):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고려 말).
- 석탑 — 다각다층탑 유행. 평창 월정사 8각 9층 석탑(고려 전기, 송 영향),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고려 말, 원 영향, 대리석) → 조선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
- 불상 — 거대한 지방색: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진미륵 — 18m),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신라 양식 계승).
- 그림 — 공민왕의 천산대렵도(원 영향). 혜허의 '관음보살도' 등 고려 불화(섬세·화려) — 대부분 일본 소재.
- 글씨 — 신품 4현: 유신·탄연·최우·김생. 후기 이암(송설체).
- 음악 — 아악(송), 향악(우리), 당악.
- 문학 — 한문학 발달. 고려 가요(쌍화점·청산별곡 등 평민 노래), 경기체가(한림별곡 — 사대부 문학).
조선 전기 (15 ~ 16세기)
1392년 ~ 1592년
이성계가 신진사대부와 함께 건국한 조선은 태조·태종·세종·세조·성종을 거치며 유교적 중앙집권 체제를 완성. 16세기에는 사림이 성장해 사화와 붕당의 시대로 진입한다.
정치정치 — 왕권과 사림의 성장
건국과 초기 왕들
- 건국(1392): 이성계 즉위. 정도전·조준 등 급진 사대부 주도. 국호 '조선'(1393), 한양 천도(1394).
- 태조 — 한양 천도. 정도전이 경복궁·종묘·사직 설계.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저술 — 재상 중심 정치 주장.
- 정도전 vs 이방원 갈등 → 1차 왕자의 난(1398): 이방원이 정도전·세자(방석) 살해.
- 정종(2대) — 개경 환도. 2차 왕자의 난(1400, 이방원 vs 이방간) → 이방원 즉위.
- 태종(3대, 1400~1418): 왕권 강화. 6조 직계제 시행(의정부 거치지 않고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 사병 혁파, 호패법(1413), 신문고 설치, 사간원 독립, 외척 견제.
- 세종(4대, 1418~1450): 조선 전성기. 의정부 서사제(다시 의정부 거침 — 왕권·신권 조화). 집현전 부활. 훈민정음 창제(1443)·반포(1446). 4군 6진 개척(최윤덕·김종서). 쓰시마 정벌(이종무, 1419), 3포 개항(부산포·제포·염포, 1426). 측우기·앙부일구·자격루 등 과학 발달.
- 문종·단종 — 짧은 재위.
- 세조(7대, 1455~1468): 계유정난(1453)으로 권력 장악, 단종 폐위. 6조 직계제 부활. 집현전·경연 폐지(왕권 강화). 직전법 시행(현직 관리에게만 토지). '경국대전' 편찬 시작.
- 성종(9대, 1469~1494): 홍문관 설치(집현전 계승), 경연 부활, 경국대전 완성·반포(1485) — 조선 통치 체제 확립. 사림 등용(김종직 등).
통치 조직
- 중앙 정치 — 의정부(영의정·좌의정·우의정 3정승, 국정 총괄), 6조(이·호·예·병·형·공조 — 행정 집행).
- 3사(언론 기관): 사헌부(관리 감찰), 사간원(왕에 대한 간쟁), 홍문관(왕의 자문·경연). 권력 견제 역할.
- 기타 — 승정원(왕명 출납), 의금부(왕 직속 사법), 한성부(서울 행정), 춘추관(역사 편찬), 성균관(최고 교육기관).
- 지방 — 8도(관찰사 파견, 임기 1년). 도 아래 부·목·군·현(수령 파견, 임기 5년).
- 모든 군현에 수령 파견 → 향·소·부곡 소멸. 향리는 수령 보좌(중인 신분으로 격하).
- 유향소 — 지방 양반 자치 기구. 수령 견제, 향리 규찰. 좌수·별감.
- 경재소 — 한양에서 유향소를 통제하는 기구. 해당 지역 출신 중앙 관리가 운영.
- 군사 — 중앙: 5위(궁궐 수비). 지방: 영진군. 진관 체제(15세기, 자체 방어) → 제승방략(16세기, 중앙군 파견) → 임진왜란 후 속오법.
- 교통·통신 — 봉수제(군사 통신), 역참(공무 출장), 조운제(세곡 운반 — 강·바다 이용해 한양 경창으로).
사림의 성장과 4대 사화
- 훈구 —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신 세력. 대농장·고관직 독점.
- 사림 — 영남·기호 지방 중소 지주 출신. 길재 → 김숙자 → 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성리학 학파. 향촌 자치·왕도 정치 강조.
- 성종이 훈구 견제 위해 사림(김종직 등) 등용.
- 무오사화(1498, 연산군): 김종직의 '조의제문'(세조의 단종 폐위 비판)을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 → 훈구파(유자광)가 고발 → 김일손 처형, 김종직 부관참시.
- 갑자사화(1504, 연산군): 폐비 윤씨 사건 빌미 → 훈구·사림 모두 화 입음. 연산군 폭정.
- 중종반정(1506): 박원종 등이 연산군 폐위, 중종 옹립.
- 기묘사화(1519, 중종): 조광조의 급진 개혁(현량과·소격서 폐지·위훈 삭제) → 훈구파 반발 → 조광조 사사, 사림 몰락.
- 을사사화(1545, 명종): 인종(대윤 윤임)·명종(소윤 윤원형) 외척 다툼 → 사림 다수 희생.
- 선조 때 사림이 다시 정계 진출 → 정권 장악.
- 붕당 형성(1575, 선조): 이조 전랑 자리를 두고 김효원(동인) vs 심의겸(서인) 대립 → 사림이 동인·서인으로 분당.
- 정여립 모반사건(1589) → 동인이 남인(이황 계열, 온건)·북인(조식·서경덕 계열, 강경)으로 분당.
경제경제 — 과전법과 농업
토지 제도 변화
- 과전법(1391, 공양왕): 신진사대부의 경제 기반. 전·현직 관리에게 경기 일대 토지의 수조권 지급. 세습 X 원칙(단, 수신전·휼양전은 예외).
- 직전법(1466, 세조):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 수신전·휼양전 폐지 → 관리들의 농장 확대 부추김(농민 수탈 심화).
- 관수관급제(1470, 성종): 국가가 직접 조세 거두어 관리에게 지급. 농민 수탈 방지 목적.
- 직전법 폐지(1556, 명종): 현직 관리도 녹봉(곡식)만 받음 → 토지 제도(수조권 분급) 사실상 소멸. 양반 지주제 강화.
수취 체제
- 조세 — 토지에 부과. 세종의 공법(1444): 전분 6등법(토지 비옥도)·연분 9등법(풍흉) → 최고 20두~최저 4두. 실제로는 4~6두로 정착.
- 공납 — 각 지방 특산물을 호(戶)별로 부과. 가장 부담 큼 — 방납(아전이 대신 납부하고 폭리)의 폐단.
- 이이·유성룡 등이 수미법(쌀로 통일) 주장 → 후에 광해군 대동법으로 실현.
- 역 — 16~60세 양인 남자에게 군역(병역)·요역(노동력) 부과.
- 군역 — 정군(현역)·보인(경비 부담). 후기 군포로 전환(군포 2필).
- 방군수포·대립의 폐단 → 임진왜란 후 군포 부담 가중 → 영조 균역법으로 1필 감.
농업 · 상공업
- 농서 — 정초의 '농사직설'(세종, 1429):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 강희맹 '금양잡록'(성종).
- 농업 기술 — 2년 3작(밭농사 윤작) 일반화. 일부 남부에 이앙법(모내기) 시작 — 단, 가뭄 위험으로 제한.
- 시비법 발달 → 휴경 극복.
- 목화 재배 확대 → 무명(면포) 일반화.
- 수공업 — 관영 수공업 중심. 공장안에 등록된 장인이 관청에서 물품 생산. 16세기 이후 부역제 약화로 민영 수공업 성장.
- 상업 — 시전(한양 종로 — 비단·종이·면포·모시·어물·무명 6의전이 큰 상권. 금난전권 보유). 경시서가 감독.
- 장시(15세기 말 ~) — 5일장으로 발달. 16세기에 전국 확산.
- 화폐 — 저화·조선통보 발행했으나 거의 유통 X. 쌀·무명이 주된 거래 수단.
- 대외 무역 — 명(공무역·사신 무역), 일본(왜관에서 제한적), 여진(국경 무역소).
사회사회 — 신분과 향촌
신분 제도
- 양천제(법제상) — 양인(자유민)과 천인(노비)으로만 구분.
- 실제로는 양반 · 중인 · 상민 · 천민의 4신분으로 운영.
- 양반 — 문반·무반. 과거·음서·천거로 관직 진출. 토지·노비 소유, 군역 면제. 점차 신분층으로 고착.
- 중인 — 기술관(역관·의관·천문관 등 잡과 합격자), 서리·향리, 서얼(양반 첩의 자식 — 문과 응시 제한).
- 상민 — 농민·수공업자·상인·신량역천(천역을 지는 양민 — 조군·수군·역졸 등).
- 천민 — 노비(공노비·사노비). 일천즉천. 매매·증여·상속 대상. 백정·무당·광대·기생·창기 등도 천민.
향촌 사회와 가족
- 유향소 — 향촌 양반 자치. 좌수·별감 선출. 향회를 통한 자치.
- 향규 — 향촌 자치 규약.
- 향약(16세기, 조광조 → 이황·이이가 보급): 향촌 교화. 4대 덕목(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
- 서원(16세기, 주세붕의 백운동 서원이 시초, 1543) — 사림의 향촌 기반. 선현 제사 + 교육. 명종 때 이황이 사액 받음(소수서원).
- 사족이 향회를 통해 군현 운영에 영향력 행사. 향리는 수령 보좌 + 사족에 종속.
- 가족 — 16세기까지는 고려 풍습 일부 잔존(남녀 균분 상속, 처가살이 일부). 17세기 이후 부계 중심으로 변화(장자 우대, 동성마을 형성, 족보 발달).
- 예학·보학 발달 — 양반의 가문 의식 강화.
문화문화 — 한글 · 과학 · 예술
훈민정음과 편찬 사업
- 훈민정음 창제(세종, 1443) · 반포(1446)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우리말 표기 문자 마련.
- 한글 보급 — '용비어천가'(왕조 찬양), '월인천강지곡'(불교 찬가), '석보상절', '동국정운'(표준 한자음).
- 역사서 — '조선왕조실록'(태조~철종, 사초·시정기 바탕으로 편년체)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4대 사고(춘추관·충주·전주·성주)에 보관, 임란 후 5대 사고.
- '고려사'(기전체, 김종서·정인지), '고려사절요'(편년체).
- '동국통감'(서거정, 성종) — 단군 ~ 고려까지 편년체 통사.
- 지리서 — '동국여지승람'(성종, 군현별 인문지리), '세종실록 지리지'(독도 기록 — '우산국').
- 지도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태종, 1402) — 현존 동양 최고(最古) 세계지도. '팔도도', '동국지도'(세조, 양성지).
- 윤리서 — '삼강행실도'(세종) — 그림과 글로 충·효·열 교육.
- 법전 — '경국대전'(세조 시작 ~ 성종 완성, 1485) — 조선 통치의 기본 법전. 이·호·예·병·형·공전 6전.
- 농서 — '농사직설'(세종, 정초) — 우리 풍토 농법. 의서 — '향약집성방'(세종), '의방유취'(세종 — 의학 백과사전).
과학 기술
- 천문 — 혼천의(천체 관측), 간의(간략화된 천체 관측 기구), 일성정시의.
- 시계 — 앙부일구(해시계, 백성용 광화문에 설치), 자격루(자동 물시계, 장영실).
- 측우기(세종, 1441) —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 기구. 측우대.
- 역법 — '칠정산'(세종) — 한양 기준 역법. 내편(원 수시력 기반) + 외편(아랍 회회력 기반). 우리 자주적 역법.
- 활자 — 계미자(태종), 갑인자(세종) — 정교한 금속활자.
- 무기 — 신기전(화살형 화약 무기), 화차(이동식 발사대). 거북선(고려 말 ~ 조선 초 개발 추정, 임란 때 이순신이 발전).
- 병서 — '총통등록'(세종), '병장도설'(문종).
예술 · 건축
- 건축 — 궁궐(경복궁·창덕궁·창경궁), 종묘, 사직단. 도성 — 4대문(흥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 + 4소문.
- 사원 건축 — 무위사 극락전(15세기),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팔만대장경 보관).
- 탑 — 원각사지 10층 석탑(세조, 대리석, 경천사지 10층 탑의 영향).
- 분청사기(15세기) — 회색 흙에 백토를 입혀 무늬. 자유분방, 서민적.
- 백자(15세기 후반 ~) — 유교적 절제미. 16세기 사림 취향으로 확산. 청화백자도 등장.
- 그림 — 안견 '몽유도원도'(안평대군 꿈 묘사), 강희안 '고사관수도'(선비의 정신).
- 사군자 — 사림의 성리학적 정신. 매·난·국·죽.
- 글씨 — 안평대군(송설체), 한호(석봉체 — 천자문 글씨로 유명).
- 음악 — 박연이 아악 정비. '악학궤범'(성종, 성현) — 음악 이론서.
- 문학 — 서거정 '동문선'(역대 한문 시문 모음). 16세기 시조·가사 발달(정철 '관동별곡'·'사미인곡').
- 성리학자 — 이황(주리론, 일본 성리학에 영향, '성학십도'), 이이(주기론, '성학집요'·'동호문답', 수미법·10만 양병설).
조선 후기 (17 ~ 19세기 전반)
1592년 임진왜란 ~ 1863년 흥선대원군 집권 전
양란(임진·병자) 이후 조선은 사회·경제 전반에서 큰 변화를 겪는다. 붕당정치 → 탕평정치 → 세도정치로 이어지며, 농업·상공업 발달, 신분제 동요, 실학·서학·동학의 등장이 특징.
정치정치 — 양란·붕당·탕평·세도
임진왜란 (1592~1598)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 정벌을 명분으로 침략. 부산 → 한양 20일 만에 함락.
- 선조 의주 피난, 명에 원군 요청.
- 이순신의 활약: 옥포·한산도(학익진)·명량·노량 해전 — 제해권 장악, 호남 곡창 보호.
- 의병 — 곽재우(홍의장군, 의령), 고경명, 조헌, 정문부 등 각지에서 봉기.
- 관군·의병·명군의 반격 → 평양 탈환(1593, 명 이여송), 행주대첩(권율).
- 휴전 협상 → 정유재란(1597) → 이순신의 명량 해전, 도요토미 사후 일본군 철수, 노량 해전(이순신 전사, 1598).
- 결과 — 인구 격감, 토지 황폐, 신분제 동요(공명첩·납속책).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로 교체, 조선의 학문·도자기 기술 이전(이삼평 — 일본 도자기 시조).
- 전후 — 통신사 파견(1607~1811, 12회) — 일본 막부의 요청, 학문·문화 교류.
- 비변사 강화 — 임시 기구였으나 양란 후 최고 의결 기구로 정착 → 의정부·6조 유명무실.
정묘·병자호란과 북벌
- 광해군(1608~1623) — 전후 복구. 대동법 시범 시행(경기, 1608). 명·후금 사이 중립 외교(강홍립의 사르후 전투).
- 인조반정(1623): 서인이 광해군 폐위(중립 외교·폐모살제 명분). 인조 즉위. 친명배금 정책.
- 이괄의 난(1624) — 인조반정 공신 책정 불만 → 한양 일시 점령.
- 정묘호란(1627, 인조): 후금(누르하치 → 홍타이지)이 침입. 형제 관계 약속.
- 병자호란(1636, 인조): 후금이 청으로 국호 변경 후 군신 관계 요구 → 거부 → 침입.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 47일 항전 후 삼전도의 굴욕(1637, 청 태종에 항복).
- 주화론(최명길) vs 척화론(김상헌) — 척화 3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 처형.
- 효종(1649~1659) — 북벌 추진. 송시열·송준길·이완을 중용, 어영청 강화. 그러나 효종 사후 흐지부지.
- 북벌 → 북학으로 변화(18세기, 청 문물 수용 주장 — 박지원·박제가).
- 나선 정벌(1654·1658, 효종): 청 요청으로 러시아군과 흑룡강 일대에서 교전. 변급·신류 활약.
붕당정치의 전개
- 동인 (선조 때) → 남인(이황)·북인(조식) 분당.
- 광해군기 — 북인 집권. 인조반정으로 북인 몰락 → 서인 정권.
- 현종 — 예송 논쟁(상복 기간 두고 서인 vs 남인 대립). 기해예송(1659) — 서인 승리, 갑인예송(1674) — 남인 승리.
- 숙종 — 환국 정치. 경신환국(1680, 서인 집권) → 기사환국(1689, 남인 집권 — 장희빈) → 갑술환국(1694, 서인 집권 — 인현왕후 복위). 일당 전제화.
- 서인이 노론(송시열, 강경)·소론(윤증, 온건)으로 분당.
- 경종 — 소론 집권. 신임옥사(1721~1722).
- 이후 노론 우세 → 영조의 탕평책으로 전환.
탕평 정치 (영조 · 정조)
- 영조(1724~1776) — 완론 탕평(온건한 인물 등용). 탕평비 건립(성균관). 산림·이조전랑 권한 약화. 서원 정리.
- 영조 정책 — 균역법(1750, 군포 2필 → 1필). 가혹한 형벌 폐지(주리·낙형 등). '속대전'·'동국문헌비고' 편찬.
- 탕평책의 한계 — 임오화변(1762): 사도세자 사사 → 시파(세자 동정) vs 벽파(세자 반대) 분당.
- 정조(1776~1800) — 준론 탕평(소론·남인까지 등용). 규장각 설치(왕실 도서관 + 친위 기구). 초계문신제(젊은 관리 재교육).
- 정조 정책 — 장용영(친위 부대) 설치, 화성 건설(수원, 1796, 정약용의 거중기 활용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해통공(1791, 시전 금난전권 폐지 — 육의전 제외).
- 정조 정책 — 서얼 차별 완화(이덕무·박제가·유득공·서이수를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대전통편' 편찬.
- 정조의 친정 강화 → 노론 견제. 그러나 정조 사후 세도 정치로 전환.
세도 정치 (19세기 전반)
- 순조(1800) 즉위 — 11세. 정순왕후(영조 계비) 수렴청정. 안동 김씨(김조순)가 권력 장악.
- 헌종 — 풍양 조씨 득세.
- 철종 — 다시 안동 김씨 집권.
- 특징 — 비변사를 안동 김씨·풍양 조씨 등 외척이 장악 → 왕권 약화, 매관매직, 부정부패.
- 삼정의 문란 — 전정(토지세) · 군정(군포) · 환곡(빈민 구제 곡식 대여)의 문란 → 농민 부담 가중.
- 농민 봉기 — 홍경래의 난(1811, 평안도, 서북 차별 + 세도 정치 반발), 임술 농민 봉기(1862, 진주 — 백낙신의 탐학 → 전국 70여 곳 확산).
- 정부 대응 — 삼정이정청 설치(1862) → 별 효과 X.
- 천주교·동학 등 새로운 사상 확산 → 정부 탄압(신유박해 1801, 기해박해 1839, 병오박해 1846, 병인박해 1866).
경제경제 — 농업 발전과 상품 화폐 경제
수취 체제 개혁
- 영정법(인조, 1635): 전세를 풍흉에 관계없이 1결당 4두로 고정 — 농민 부담 경감, 그러나 부가세로 실질 부담은 큼.
- 대동법(광해군 1608 시범 → 효종·현종·숙종 확대, 1708 전국 완성):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대동미 1결당 12두)·삼베·동전으로 통일.
- 대동법 시행으로 — 농민 부담 경감, 방납 폐단 해소, 공인(貢人) 등장(국가에 물품 조달 → 상품 화폐 경제 발달의 계기).
- 균역법(영조, 1750): 군포 2필 → 1필. 부족분은 결작(토지 1결당 2두), 어염세, 선무군관포(부유 양민 일부에 군포), 잡세로 보충. 농민 부담 일시 경감.
- 그러나 19세기 세도 정치로 다시 삼정의 문란 → 농민 봉기.
농업의 발전
- 이앙법(모내기)의 전국 확산(17~18세기): 노동력 절감, 단위 면적당 생산량 증가, 이모작 가능(벼+보리). 광작 가능 → 일부 농민이 부농으로 성장. 나머지는 임노동자·소작농으로 전락.
- 견종법(밭 이랑·고랑 농법) 보급.
- 구황 작물 — 고구마(영조, 일본에서 — 조엄), 감자(헌종, 청에서) 전래.
- 상품 작물 — 인삼·면화·담배·고추·약초 등 환금 작물 재배 확대.
- 농서 — 홍만선 '산림경제'(숙종), 박세당 '색경', 서호수 '해동농서', 서유구 '임원경제지'(농촌 생활 백과).
- 광산 — 17세기 설점수세제 → 민영 광산 발달. 잠채(불법 채굴) 성행. 덕대(전문 광산 경영자) 등장.
- 수공업 — 관영 수공업 쇠퇴, 민영 수공업 발달. 선대제(상인 자본이 수공업자에게 자금·원료 미리 지급) → 상업 자본의 수공업 지배.
상업 · 화폐 발달
- 공인 — 대동법 시행으로 등장. 관청에 물품 조달, 도고(독점 상인)로 성장.
- 사상(私商) — 한양 시전 외 상인. 칠패·이현·송파 등에서 활동.
- 대표 사상 — 경강상인(한강, 운송업·미곡), 송상(개성, 인삼·전국 송방), 만상(의주, 대청 무역), 내상(동래, 대일 무역), 유상(평양).
- 장시(5일장) — 18세기 전국 1,000여 개. 보부상이 장시 연결.
- 신해통공(1791, 정조): 시전(육의전 제외)의 금난전권 폐지 → 사상의 자유로운 상업 활동 보장.
- 화폐 — 상평통보(인조 1633 시범 → 숙종 1678 전국 유통). '엽전'으로 일반화. 대규모 거래는 환·어음 사용.
- 전황(錢荒) — 화폐 부족 현상. 부자가 화폐를 축장(蓄藏)한 결과.
- 대외 무역 — 청과 개시(공식)·후시(사적) 무역. 일본과 왜관 무역(인삼·은 수출).
- 포구 상업 발달 — 강경·원산·마산 등이 상업 중심지.
사회사회 — 신분제 동요와 사상 변화
신분제의 동요
- 양반 — 권력 독점 일부 양반(권반)과 향반·잔반(몰락 양반)으로 분화. 잔반은 농민과 다름없는 처지.
- 양반 수 증가 — 공명첩(임진왜란 때 처음), 납속책(돈으로 신분 상승), 족보 위조·매수 → 양반 인구 급증.
- 중인 — 신분 상승 운동. 철종 때 대규모 통청 운동(고위직 진출 요구).
- 서얼 — 영조·정조 때 차별 완화(서얼통청). 정조가 이덕무·박제가·유득공 등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
- 상민 — 부농 등장(이앙법·광작), 부상대고(부유한 상인) — 신분 상승 시도.
- 노비 — 도망·납속·군공으로 신분 상승. 영조 때 노비종모법(1731, 어머니가 양인이면 자식도 양인). 순조 때 공노비 해방(1801, 6만 6천 명). 갑오개혁(1894)으로 신분제 공식 폐지.
- 전체 인구 중 양반 비율 증가, 노비 감소 → 신분제 동요.
실학의 등장
- 배경 — 양란 후 사회 모순 심화, 성리학 한계, 청 문물 수용 자극.
- 초기 실학 — 이수광 '지봉유설'(백과사전), 한백겸 '동국지리지'.
- 중농학파(경세치용, 농촌 문제 해결): 토지 제도 개혁이 핵심.
- 유형원 '반계수록' — 균전론(신분에 따라 토지 차등 분배).
- 이익 '성호사설' — 한전론(영업전 제외하고 매매 허용, 점진적 균전). 6좀 비판(노비·과거·양반문벌·기교·승려·게으름).
- 정약용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 여전론(마을 단위 공동 농장 → 노동에 따라 분배), 후에 정전제 주장. 거중기로 수원 화성 건설 기여.
- 중상학파(이용후생, 북학파): 상공업 진흥, 청 문물 수용.
- 유수원 '우서' — 사농공상 평등, 직업 분업.
- 홍대용 '의산문답'·'임하경륜' — 지전설(지구 자전), 무한우주론, 신분 철폐.
- 박지원 '열하일기'·'양반전'·'허생전' — 수레·선박·화폐 사용 주장, 양반의 무능 비판.
- 박제가 '북학의' — 소비를 우물에 비유(쓸수록 생긴다), 수레·선박 이용, 청과 통상 강화.
- 국학 — 안정복 '동사강목'(고조선 ~ 고려, 정통론), 유득공 '발해고'(남북국 시대 용어 처음 사용 — 발해를 우리 역사로), 이종휘 '동사', 한치윤 '해동역사'.
- 지리 — 김정호 '대동여지도'(1861) — 22첩 목판 인쇄, 거리·축척 표시.
- 백과사전 — 이수광 '지봉유설', 이익 '성호사설', 이덕무 '청장관전서',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서유구 '임원경제지'.
- 한계 — 대부분 정책에 반영되지 못함. 실학자들 대부분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서얼.
서학 · 동학 · 천주교
- 서학(천주교) — 17세기 청에서 학문으로 전래(이수광 '지봉유설'에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소개).
- 18세기 후반 신앙으로 발전 —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1784, 우리나라 최초). 정약전·정약용 형제 등 남인 학자 중심.
- 정부 탄압 — 신해박해(1791, 정조), 신유박해(1801, 순조 — 정약용 강진 유배, 정약전 흑산도 유배, 황사영 백서 사건), 기해박해(1839), 병오박해(1846, 김대건 신부 순교), 병인박해(1866, 흥선대원군 — 대규모 처형 → 병인양요 빌미).
- 박해 이유 — 평등 사상, 제사 거부(유교 사회와 충돌), 외세 결탁 우려.
- 동학(1860, 철종) — 경주 최제우가 창시.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 — 평등 사상. 후천개벽 — 새 시대.
- 동학은 유·불·선 + 민간 신앙 결합. 시천주·보국안민·광제창생.
- 최제우 처형(1864, 혹세무민) → 2대 교주 최시형이 '동경대전'·'용담유사' 편찬, 교단 정비.
- 동학은 19세기 말 농민 봉기와 결합 → 동학 농민 운동(1894).
문화문화 — 서민 문화의 발달
회화 · 공예
- 진경산수화 — 우리 산천을 사실적으로. 정선 '인왕제색도'·'금강전도'.
- 풍속화 — 서민 생활을 생동감 있게. 김홍도(서민의 일상 — 씨름·서당·무동 등 따뜻한 시선), 신윤복(양반·기녀·도시 풍속 — '미인도'·'단오풍정').
- 민화 — 작자 미상 서민 그림. 호랑이·까치·문자도·책가도 등. 길상·벽사 의미.
- 강세황 '영통동구도' — 서양 원근법·명암법 도입.
- 김정희 '세한도'(추사체) — 문인화의 정수.
- 장승업(19세기 말) — 호방한 화풍, 영모·산수.
- 도자기 — 백자가 주류, 청화백자(코발트 안료 푸른 무늬) 유행, 철화·진사 백자도. 후기로 갈수록 서민용 옹기·분청도.
- 건축 — 사원 건축 발달. 김제 금산사 미륵전(3층), 보은 법주사 팔상전(5층 — 유일한 목탑), 구례 화엄사 각황전. 모두 17세기 후반.
- 수원 화성(정조, 1796) — 정약용 거중기 활용, 군사·상업·정치 복합 도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민 문학 · 공연
- 한글 소설 — 허균 '홍길동전'(최초 한글 소설, 적서 차별 비판), '춘향전'·'심청전'·'흥부전'·'장화홍련전' 등 — 서민 의식 반영.
- 사설시조 — 형식 자유, 서민 감정·풍자.
- 판소리 — 신재효가 12마당을 정리 → 6마당(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변강쇠가). 광대·서민이 즐긴 종합 예술.
- 탈춤(가면극) — 봉산탈춤·양주별산대놀이·통영오광대 등. 양반 풍자, 파계승 조롱, 처첩 갈등.
- 한문학 — 박지원의 한문 소설('양반전'·'허생전'·'호질') — 양반 사회 비판.
- 위항 문학 — 중인·서얼·평민의 문학 활동. 시사(詩社) 결성.
과학 · 의학
- 천문 — 김석문 '역학도해'(지전설 최초 주장), 홍대용(지전설·무한우주론), 이익·정약용도 지전설 인정.
- 역법 — 시헌력 도입(효종 1653, 김육) — 청을 통해 받은 서양 역법.
- 지도 — '곤여만국전도'(이광정·권희, 1603 — 마테오 리치 세계지도 전래), 정상기 '동국지도'(축척 사용), 김정호 '대동여지도'(1861 — 22첩).
- 의학 — 허준 '동의보감'(광해군, 1610)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정약용 '마과회통'(홍역). 이제마 '동의수세보원'(고종, 사상의학 — 태양·태음·소양·소음).
- 농서 — 신속 '농가집성', 박세당 '색경', 홍만선 '산림경제', 서호수 '해동농서', 서유구 '임원경제지'.
- 수학 — 최석정 '구수략', 홍대용 '주해수용'.
- 과학 기술의 한계 — 정책 반영 부족, 실학자들 개인 차원에서 머무름.
개항기 · 대한제국 (1863 ~ 1910)
1863년 흥선대원군 집권 ~ 1910년 국권 피탈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쇄국, 강화도조약을 통한 개항, 임오군란·갑신정변·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을미사변·아관파천·대한제국 수립을 거쳐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으로 국권을 상실하는 시기.
정치정치 — 개혁과 외세의 침탈
흥선대원군의 개혁과 양요
- 고종 즉위(1863, 12세) — 흥선대원군 이하응 섭정.
- 내정 개혁 — 세도 정치 타파(안동 김씨 축출), 비변사 축소·폐지(의정부·삼군부 부활), 경복궁 중건(원납전·당백전 발행 → 인플레이션).
- 법전 편찬 — '대전회통', '육전조례'.
- 삼정 개혁 — 전정(양전 사업), 군정(호포제 — 양반도 군포), 환곡(사창제로 전환).
- 서원 정리 — 600여 개 → 47개로. 만동묘 철폐.
- 통상 수교 거부 정책 — '척화비' 건립(1871).
- 병인박해(1866) — 천주교 탄압. 프랑스 신부 9명 + 신자 8천 명 처형.
- 병인양요(1866) — 프랑스가 강화도 침입. 한성근(문수산성), 양헌수(정족산성)가 격퇴. 외규장각 도서 약탈(2011년 일부 영구임대 형식 반환).
-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 —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 시도 → 양이 멸시 강화.
- 신미양요(1871) — 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 빌미로 침입. 어재연이 광성보에서 항전(전사).
- 고종 친정(1873) — 최익현의 상소로 흥선대원군 하야. 민씨 척족 집권.
개항과 불평등 조약
- 운요호 사건(1875) —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침입 → 조선 발포 → 일본이 보복.
- 강화도 조약(1876, 조일수호조규) —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 불평등 조약.
- 주요 내용 — 조선은 자주국(청 종주권 부정), 3개 항구 개항(부산·원산·인천), 일본의 해안 측량권, 치외법권(영사 재판권).
- 조일수호조규 부록 — 일본 화폐 유통, 거류지 10리 이내.
- 조일통상장정 — 무관세, 양곡의 무제한 유출, 최혜국 대우(1883 개정).
-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 청 이홍장 알선. 서양과 첫 조약. 거중조정 조항, 최혜국 대우, 관세 부과.
- 이후 영국(1883)·독일(1883)·러시아(1884)·프랑스(1886) 등과 조약.
- 조선책략 — 청 황쭌셴이 저술, 1880년 김홍집이 들여옴. '친중국·결일본·연미국'을 주장 → 미국과의 수교에 영향. 영남만인소(이만손 등) 반대 운동.
개화 정책과 반발 (1880년대)
- 통리기무아문 설치(1880) — 개화 정책 총괄 기구. 그 아래 12사.
- 신식 군대 별기군 설치(1881) — 일본인 교관 훈련. 구식 군대 차별.
- 수신사(일본) 파견 — 1차 김기수(1876), 2차 김홍집(1880, 조선책략 도입).
- 조사 시찰단(1881, 일본) — 박정양·홍영식·어윤중 등이 비밀리 일본 시찰.
- 영선사(1881, 청) — 김윤식 인솔. 톈진에서 무기 제조 학습 → 기기창 설립(1883).
- 보빙사(1883, 미국) — 민영익·홍영식 등. 최초의 구미 사절단.
- 위정척사 운동 — 보수 유생의 개화 반대. 1860년대 이항로·기정진(통상 반대), 1870년대 최익현('왜양일체론' — 강화도 조약 반대), 1880년대 이만손 '영남만인소'(개화 정책 반대).
- 임오군란(1882, 고종) — 구식 군대(별기군 차별, 13개월 봉급 체불) 반란. 별기군 일본 교관 살해, 일본 공사관 습격, 명성황후 피신. 흥선대원군 재집권 → 청군 개입(원세개 이끄는 3천)으로 진압.
- 임오군란 결과 — 청의 내정 간섭 강화(고문 마젠창·묄렌도르프 파견).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청 상인의 내지 통상권). 일본과 제물포 조약(배상금, 일본군 주둔 허용) → 일본 영향력도 확대.
갑신정변과 동학 농민 운동
- 갑신정변(1884, 고종) — 김옥균·박영효·홍영식·서광범·서재필 등 급진 개화파(개화당)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이용해 정변.
- 14개조 정강 — 청에 대한 사대 폐지, 문벌 폐지·인민 평등, 지조법 개혁, 혜상공국 폐지, 내각 중심제(입헌군주제), 재정 호조 통합.
- 삼일천하 — 청군(원세개)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 김옥균 등 일본 망명.
- 결과 — 한성 조약(일본 — 배상금·공사관 신축비), 톈진 조약(청·일본 — 동시 철병, 파병 시 사전 통보) → 후에 청일 전쟁의 빌미.
- 한반도 중립화론(부들러·유길준 — 1885) 제기.
- 거문도 사건(1885~1887) — 영국이 러시아 견제 위해 거문도 점령.
-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년) —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 → 전봉준이 봉기(1894.1, 고부 봉기). '사발통문'.
- 1차 봉기(3월) — 백산 봉기. 4대 강령. 황토현·황룡촌 전투에서 승리, 전주성 점령(4월).
- 전주 화약(5월) — 정부와 협상, 폐정 개혁안 12개조 합의. 집강소 설치(폐정 개혁 실행), 호남 53주에 설치.
- 2차 봉기(9월) —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6월)에 반발. '척왜' 기치. 남접(전봉준) + 북접(손병희) 연합 → 우금치 전투(11월, 공주)에서 일본군·관군에 대패.
- 전봉준 체포(12월) → 처형(1895). 동학 농민 운동은 갑오개혁·항일 의병으로 이어짐.
갑오 · 을미개혁
- 제1차 갑오개혁(1894.7~12) — 일본의 경복궁 점령 후 김홍집 내각 수립. 군국기무처가 주도.
- 정치 — '개국 기년' 사용(중국 연호 폐지), 6조 → 8아문, 과거제 폐지, 경무청 설치.
- 사회 — 신분제 폐지(법제상), 노비제 폐지, 조혼 금지, 과부 재가 허용, 고문·연좌제 폐지.
- 경제 — 재정 일원화(탁지아문), 은 본위제, 도량형 통일, 조세 금납화.
- 제2차 갑오개혁(1894.12 ~ 1895.7) — 일본 영향 강화. 김홍집·박영효 연립 내각.
- 정치 — 의정부 → 내각, 8아문 → 7부. 23부제(지방 8도 → 23부). 재판소 설치(사법권 독립).
- 교육 — 교육입국조서 반포(1895.2), 한성사범학교·외국어학교 관제.
- 고종이 종묘에서 홍범 14조 반포(1894.12) — 자주 독립·개혁 의지.
- 삼국 간섭(1895.4) — 러시아·프랑스·독일이 일본의 랴오둥 반환 강요 → 일본 약화 → 조선이 친러로.
- 을미사변(1895.10) — 일본 공사 미우라가 명성황후 살해(을미년 변).
- 을미개혁(1895.10 ~ 1896.2) — 김홍집 내각 재구성. 단발령(1895.11), 태양력 사용, '건양' 연호, 종두법, 우편 사무.
- 단발령 반발 — 을미의병(이소응·유인석 등 유생) 봉기. 아관파천 후 단발령 철회.
- 아관파천(1896.2)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친러 내각 수립, 김홍집 처형. 한반도에서 러시아 영향력 강화. 1년 후 환궁(1897.2).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 독립협회(1896.7) — 서재필 주도.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 건립. '독립신문'(1896.4) — 최초 민간 한글 신문.
- 활동 — 만민공동회(1898.3, 종로) — 러시아 절영도 조차 요구 저지, 한러은행 폐쇄. 관민공동회(1898.10) — 헌의 6조 결의(중추원 의관 선출 등).
- 익명서 사건(1898.11)으로 황국협회(보부상) 동원해 해산. 17명 구속(이상재 등).
- 대한제국 수립(1897.10) —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 국호 '대한제국', 연호 '광무'.
- 광무개혁 — 구본신참(舊本新參, 옛것을 근본으로 새 것 참고)의 원칙.
- 정치 — 대한국 국제 반포(1899) — 황제 전제권 명시.
- 군사 — 원수부 설치, 시위대·진위대 강화.
- 경제 — 양전 사업(1898~) → 지계 발급(근대적 토지 소유권 문서). 식산흥업 정책 — 상공학교·광무학교 설립.
- 근대 시설 — 한성전기회사(1898), 전등(경복궁), 전차(서대문~청량리 1899), 경인선(1899), 경부선(1905), 경의선(1906).
- 한계 — 황제권 강화 중심, 민권 보장 미흡. 외세 의존.
국권 피탈 과정
- 러일전쟁(1904~1905) — 일본 승리. 가쓰라-태프트 밀약(미국이 일본의 한국 지배 인정 ↔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 인정). 포츠머스 조약(러시아가 일본의 한국 지배 인정).
- 한일의정서(1904.2) — 일본이 군사상 필요 지역 점령권. 외교 시 일본과 협의.
- 제1차 한일협약(1904.8) — 고문 정치. 외교 고문 스티븐스(미국), 재정 고문 메가타(일본) 파견.
-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 1905.11) —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 을사 5적 — 이완용·박제순·이근택·이지용·권중현.
- 고종의 저항 — 헤이그 특사 파견(1907, 이상설·이준·이위종) → 만국평화회의 참석 거부당함. 이를 빌미로 일본이 고종 강제 퇴위.
-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 1907.7) — 행정권 박탈, 차관 정치, 부속 비밀 각서로 군대 해산.
- 기유각서(1909) — 사법권·감옥 사무 박탈.
- 한일병합조약(1910.8.29) — 국권 강탈. 데라우치 통감 ↔ 이완용 총리. 조선 총독부 설치.
- 민족 저항 — 을사늑약 무효 운동(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 — 황성신문), 민영환 자결, 나철·오기호 5적 암살단, 안중근의 이토 사살(1909.10.26, 하얼빈).
- 의병 — 을미의병(1895, 명성황후 시해·단발령) → 을사의병(1905, 평민 의병장 신돌석 등) → 정미의병(1907, 군대 해산 군인 합류) → 13도 창의군(1908, 서울 진공 작전 — 이인영·허위).
- 남한 대토벌 작전(1909) — 일제의 의병 학살. 의병 운동 일시 위축, 만주·연해주로 이동.
- 애국 계몽 운동 — 보안회(황무지 개간 반대), 헌정연구회, 대한자강회(고종 퇴위 반대), 신민회(1907, 비밀결사 — 안창호·양기탁·이승훈 — 105인 사건으로 해산 1911).
경제경제 — 외세 침탈과 경제 자주 운동
외세 경제 침탈
- 개항 직후 — 일본 상인의 미곡 유출. 곡물 가격 폭등 → 방곡령(1889, 함경도 조병식) → 일본이 배상금 요구로 철회.
- 1880년대 — 청 상인(임오군란 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과 일본 상인의 경쟁. 객주·여각 등 토착 상인 위축.
- 청일 전쟁 후(1895) — 일본 상인 우위 확립.
- 이권 침탈 — 아관파천 후 열강의 이권 침탈 본격화. 러시아(절영도·압록강·두만강 삼림), 미국(운산 금광·전등·전화), 영국(은산 금광), 일본(경인·경부·경의 철도), 독일(당현 금광), 프랑스(경의선 부설권 — 후에 일본에).
- 화폐정리사업(1905, 메가타) — 백동화·엽전 → 일본 제일은행권. 갑·을·병으로 등급 매겨 차등 교환 또는 폐기. 한국 상인·은행 큰 타격.
- 동양척식주식회사(1908) — 일제의 토지 수탈 첨병.
경제 자주 운동
- 방곡령(1889) — 곡물 유출 방지. 외교 마찰로 철회.
- 상회사·은행 설립 — 대동상회(1883), 장통회사. 조선은행(1896), 한성은행(1897), 대한천일은행(1899).
- 철도부설권 회수 운동 — 박기종 등이 대한철도회사 설립 시도.
- 황무지 개간권 반대 운동(1904) — 보안회 활약 → 일본 요구 철회.
- 국채보상운동(1907, 대구) — 일본 차관 1,300만 원 갚자는 운동. 서상돈·김광제 발기. 금연·금주, 패물 헌납.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 후원. 통감부의 양기탁 구속(횡령 누명) 등 탄압으로 좌절.
- 민족 자본 — 평양 자기회사, 종로 직조사 등. 근대적 회사 설립 시도.
사회사회 — 신분제 폐지와 근대 문물
사회 변화
- 갑오개혁(1894) — 신분제·노비제·과거제 법적 폐지. 조혼 금지, 과부 재가 허용, 고문·연좌제 폐지.
- 을미개혁 — 단발령(반발 큼 — 을미의병의 직접 원인).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 민권·자유민권 사상 확산.
- 근대 교육 — 원산학사(1883, 최초 근대학교, 함경 덕원), 동문학(1883, 통역관 양성), 육영공원(1886, 영어·근대 학문, 헐버트 등 미국인 교사).
- 갑오개혁 후 — 한성사범학교(1895), 외국어학교, 소학교.
- 사립학교 — 배재학당(1885, 아펜젤러), 이화학당(1886, 스크랜튼), 경신학교, 정신여학교, 숭실학교(1897, 평양).
- 민족계 사립학교 — 보성학교(이용익, 1905), 양정의숙(엄주익), 휘문의숙(민영휘), 대성학교(안창호 1908, 평양), 오산학교(이승훈 1907, 정주).
- 사립학교령(1908, 통감부)으로 민족 학교 탄압.
- 여성 사회 진출 — 여학교 설립, 여성 단체(찬양회 1898, 순성여학교 추진).
- 근대 의료 — 광혜원/제중원(1885, 알렌, 후에 세브란스병원), 광제원(1900).
- 신문 — 한성순보(1883, 박문국, 최초 신문, 한문), 한성주보(1886, 국한문), 독립신문(1896, 서재필, 최초 한글), 황성신문(1898, 국한문, '시일야방성대곡'), 제국신문(1898, 한글, 부녀자·서민층), 대한매일신보(1904, 베델·양기탁, 항일 논조 — 일본의 검열 X), 만세보(1906, 천도교, 여성·서민), 경향신문(1906, 천주교).
문화문화 — 근대 문물과 국학 운동
종교 · 사상
- 천도교(1905) —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 '만세보' 발행.
- 대종교(1909) — 나철·오기호가 단군 신앙 기반으로 창시. 만주에서 항일 운동(중광단·북로군정서).
- 기독교 — 학교·병원·신문으로 근대 문물 보급. 황성기독교청년회(1903, YMCA).
- 유교 — 박은식의 '유교구신론'(1909) — 양명학 기반 개혁 유교 주장.
- 불교 —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1913) — 불교 개혁.
- 위정척사 → 의병 운동으로 계승. 개화 사상 → 애국 계몽 운동으로 계승.
국학 연구 · 국문 운동
- 국어 — 국문연구소(1907, 학부 산하). 주시경·지석영 등이 한글 연구. 주시경 '국어문법'(1910), '말의 소리'(1914).
- 국사 — 신채호 '독사신론'(1908) — 민족주의 사학의 시작. '을지문덕전'·'이순신전'·'최도통전'으로 영웅 강조.
- 박은식 — '동명성왕실기', '천개소문전'. 후에 '한국통사'(1915, 망국 원인),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 장지연 '시일야방성대곡'(1905, 황성신문) — 을사늑약 비판.
- 조선광문회(1910, 최남선·박은식) — 고전 정리·간행.
- 신문학 — 최남선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 소년) — 최초 신체시. 이인직 '혈의 누'(1906) — 최초 신소설.
근대 시설 · 건축
- 통신 — 전신(1885, 서울~인천), 우편(1884 우정총국 → 갑신정변으로 중단 → 1895 재개), 전화(1898, 경운궁).
- 교통 — 전차(1899, 서대문~청량리), 철도 — 경인선(1899, 노량진~제물포), 경부선(1905), 경의선(1906), 경원선(1914).
- 근대 건축 — 독립문(1897), 명동성당(1898, 고딕), 덕수궁 석조전(1910, 르네상스), 정관헌(덕수궁 — 한·양 절충).
- 기타 — 한성전기회사(1898), 가로등(종로), 전등(경복궁 1887).
- 근대 문물 도입은 외세 침탈과 함께 진행 → 이중적 성격.
일제강점기 (1910 ~ 1945)
1910년 ~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의 무단통치 → 문화통치(3·1운동 후) → 민족말살통치(중일전쟁 후)로 이어지는 식민 지배기. 국내외 독립운동(3·1운동, 임시정부, 의열단, 한인애국단, 광복군 등)이 활발히 전개된다.
정치정치 — 식민 통치와 독립운동
일제 식민 통치 3단계
- 1910년대 — 무단 통치(헌병 경찰 통치). 조선총독부(총독은 일왕 직속, 입법·행정·사법·군 통수권 장악).
-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 수행. 조선태형령(1912, 한국인만 적용), 즉결처분권.
- 기본권 박탈 — 집회·결사·언론·출판 자유 박탈. 보안법·신문지법·출판법.
- 교사·관리도 제복·칼 착용.
- 토지조사사업(1910~1918) — 신고주의 → 미신고 토지·왕실 토지 등 총독부가 약탈. 동양척식주식회사·일본 이민자에게 불하.
- 회사령(1910) — 회사 설립 총독 허가제. 민족 자본 성장 억제.
- 1920년대 — 문화 통치(3·1운동 후 회유책). 사이토 마코토 총독.
- 보통경찰제(헌병 → 경찰, 그러나 경찰 수·예산 3배 증가). 한국인 관리·교사 채용 형식적 확대.
- 조선일보·동아일보 허용(1920) → 검열·정간·삭제 일상.
- 친일파 양성 정책 — 민족 분열책.
- 치안유지법(1925) — 사회주의·민족운동 탄압.
- 산미증식계획(1920~1934) — 일본 식량 부족 해결 위해. 한국에서 쌀 증산 → 그러나 증산량보다 더 많이 일본 반출 →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 감소, 만주 잡곡 수입.
- 회사령 폐지(1920, 신고제 전환) → 일본 자본 본격 진출.
- 1930년대 ~ 1945년 — 민족 말살 통치(중일전쟁 1937, 태평양전쟁 1941).
- 내선일체·일선동조론 — 한국인을 일본인화.
- 황국신민서사 암송(1937), 신사참배 강요(거부 시 학교 폐쇄, 주기철 목사 순교), 궁성요배.
- 창씨개명(1940), 한국어·한국사 교육 금지, 조선·동아일보 폐간(1940).
- 국가총동원법(1938) → 인적·물적 수탈. 지원병제(1938) → 학도지원병(1943) → 징병제(1944). 국민징용령(1939), 정신대(여자정신근로령 1944) —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 공출 — 쌀·놋쇠·금속 강제 수탈. 식량 배급제, 미곡 공출제.
- 남면북양 — 남부 면화, 북부 양 사육 강요.
3·1 운동과 임시정부
- 배경 — 윌슨의 민족자결주의(1918), 러시아 혁명(1917), 일제 무단 통치의 한계, 고종 의문사(1919.1).
- 사전 운동 — 도쿄 2·8 독립선언(1919.2.8, 유학생). 만주 길림 무오 독립선언(1918).
- 3·1 운동(1919) — 민족 대표 33인(천도교 손병희·기독교 이승훈·불교 한용운 중심)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탑골공원에서 학생·시민 만세 시위.
- 전국·해외 확산 — 3월 중순 ~ 5월. 만주·연해주·미주에서도 시위.
- 일제 탄압 — 화성 제암리 학살(4월), 유관순 등 검거·처형. 사망 7,500여 명.
- 의의 — 우리 민족 최대 규모 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결정적 계기. 일제의 문화통치 전환 배경. 중국 5·4 운동 등에 영향.
- 한계 — 조직적 지도 부족, 비폭력 한계, 무력 항쟁 필요성 인식.
-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 상하이) — 한성정부·대한국민의회(연해주)·상하이 임시정부 통합. 민주공화제, 3권 분립,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 초기 활동 — 연통제(국내 비밀 행정망), 교통국(통신·자금), 독립공채, 외교 활동(파리강화회의 김규식, 구미위원부).
- 기관지 — '독립신문'(1919). '한일관계사료집' 편찬.
- 국민대표회의(1923, 상하이) — 임정 노선 갈등. 창조파(신채호 — 새 정부 수립) vs 개조파(안창호 — 임정 개편) vs 현상유지파(김구). 합의 실패로 임정 침체.
- 이승만 탄핵(1925) — 위임통치 청원 문제. 박은식이 대통령으로.
- 1930년대 ~ 한인애국단(김구 조직, 1931) — 이봉창 도쿄 의거(1932.1), 윤봉길 상하이 훙커우 의거(1932.4) → 중국 국민당 지원 계기.
- 임정 이동 — 상하이 → 항저우 → 진강 → 창사 → 광저우 → 류저우 → 치장 → 충칭(1940 정착).
- 충칭 임정 — 김구 주석 체제. 한국광복군 창설(1940.9, 지청천 총사령).
- 건국 강령(1941, 조소앙 — 삼균주의 — 정치·경제·교육 균등).
- 한국광복군 — 대일 선전포고(1941.12), 인도·미얀마 전선 파견(1943), 미국 OSS와 국내 진공 작전 훈련(1945) — 광복으로 무산.
무장 독립 투쟁
- 1920년대 만주·연해주 — 봉오동 전투(1920.6, 홍범도 대한독립군), 청산리 대첩(1920.10, 김좌진 북로군정서 + 홍범도 — 일본군 1,200여 명 사살, 우리 독립군 최대 승리).
- 보복 — 간도 참변(1920.10~1921.4) — 일제가 만주 한인 학살(3,500여 명).
- 자유시 참변(1921, 흑하 사변) — 러시아 적군이 한인 무장 부대 무장 해제 → 다수 희생.
- 3부 성립(1923~1925) — 참의부(임정 직속, 압록강 일대), 정의부(남만주), 신민부(북만주).
- 미쓰야 협정(1925) — 일제와 만주 군벌이 독립군 탄압 합의.
- 3부 통합 운동 → 혁신의회(북만주, 신민부+참의부 일부) + 국민부(남만주, 정의부+신민부 일부).
- 1930년대 — 한·중 연합 작전. 한국독립군(지청천, 북만주) — 쌍성보·대전자령·동경성 전투. 조선혁명군(양세봉, 남만주) — 영릉가·흥경성 전투.
- 동북항일연군(중국 공산당 산하) — 김일성 등 참여. 보천보 전투(1937).
- 조선의용대(1938, 김원봉 — 한커우) — 중국 관내 최초 한인 부대. 후에 일부는 화북으로 이동해 조선의용군이 됨(1942, 조선독립동맹), 일부는 한국광복군에 합류(1942).
- 한국광복군(1940, 임정) — 미·중과 연합 작전, 국내 진공 계획.
국내 항일 운동 · 의열 투쟁
- 의열단(1919, 만주 길림, 김원봉) — 신채호 '조선혁명선언'(1923)이 이념. 5파괴·7가살.
- 의열단 의거 — 박재혁(1920, 부산경찰서), 최수봉(1920, 밀양경찰서), 김익상(1921, 조선총독부), 김상옥(1923, 종로경찰서), 김지섭(1924, 도쿄 궁성), 나석주(1926, 동양척식주식회사·식산은행).
- 의열단 → 1926년 이후 조직적 무장 투쟁 노선으로. 황푸군관학교 입학(1926), 조선혁명간부학교 설립(1932, 난징).
- 한인애국단(1931, 김구 — 상하이) — 이봉창(1932.1.8, 도쿄), 윤봉길(1932.4.29, 상하이 훙커우).
- 6·10 만세 운동(1926) — 순종 인산일. 학생·사회주의·천도교 합작. 민족 유일당 운동 계기.
-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11.3) — 광주에서 한·일 학생 충돌 계기. 전국 확산, 신간회 진상조사단 파견. 3·1 운동 이후 최대.
- 신간회(1927~1931) — 비타협 민족주의(이상재 회장) + 사회주의의 좌우 합작 단체. 광주학생운동 진상 조사·민중 대회 추진(실패). 강령 — 민족 단결, 정치·경제 각성, 기회주의 부인. 31년 해소.
- 근우회(1927) — 신간회의 자매 단체, 여성 운동.
- 민립대학 설립 운동(1923, 이상재) — '한민족 1천만 한 사람이 1원씩' → 일제의 경성제국대학 설립으로 무산.
- 물산장려운동(1920년대 초, 평양 조만식) — '내 살림 내 것으로'·'조선 사람 조선 것'. 토산품 애용. 한계 — 자본가 이익, 가격 상승.
- 문맹 퇴치 — 브나로드 운동(1931~1934, 동아일보) — '민중 속으로'. 학생들이 농촌에서 한글·산수 교육. 조선일보의 문자보급운동.
- 농민·노동 운동 — 암태도 소작쟁의(1923, 전남), 원산 노동자 총파업(1929, 약 4개월).
경제경제 — 수탈 정책
단계별 경제 수탈
- 1910년대 — 토지조사사업(1910~1918): 신고제. 신고 절차 복잡·기간 짧음 → 미신고 토지·왕실·문중 토지 등 총독부가 약탈. 동양척식주식회사·일본 이민자에 불하 → 한국인 자영농 → 소작농 전락.
- 회사령(1910): 회사 설립 총독 허가제 → 민족 자본 억제.
- 어업령·삼림령·광업령 등 — 자원 수탈.
- 전매제(인삼·소금·담배·아편) — 총독부 독점.
- 1920년대 — 산미증식계획(1920~1934): 일본 쌀 부족 해결. 수리·종자 개량으로 증산. 그러나 증산량보다 더 많은 쌀 일본 반출 → 한국 1인당 쌀 소비량 감소(1912년 0.77석 → 1930년 0.45석), 만주 잡곡 수입.
- 회사령 폐지(1920) — 신고제로 → 일본 자본 진출. 관세 철폐(1923).
- 신은행령(1928) — 한국인 은행 합병.
- 1930년대 ~ 1945년 — 병참기지화 정책. 한국에 군수 공업(북부 — 자원·전력·노동력 풍부).
- 남면북양 — 남부 면화, 북부 양 사육 강요.
- 국가총동원법(1938) — 인적·물적 동원 법적 근거.
- 공출제 — 쌀·놋쇠·금속·고철 강제 수탈. 학교 종·교회 종까지.
- 식량 배급제 — 한국인은 극소량.
- 강제 동원 — 지원병(1938) → 학도병(1943) → 징병제(1944). 국민징용령(1939) — 탄광·공장·전쟁터로 강제 동원.
- 정신대 — 여자정신근로령(1944). 일본군 '위안부' 동원 — 일제의 조직적 성노예 동원.
사회사회 — 식민지 사회
사회 운동과 변화
- 민족 분열 — 친일파 양성, 청년·여성·노동·농민 등 분야별 운동.
- 1920년대 사회주의 유입 — 조선공산당(1925, 김재봉 외), 조선노농총동맹(1924) → 조선노동총동맹·조선농민총동맹으로 분리(1927).
- 민족유일당 운동 — 좌우 합작. 6·10 만세 운동 후 본격화 → 신간회·근우회 결성(1927).
- 형평 운동(1923, 진주) — 백정의 신분 차별 철폐 운동. 형평사 조직. 평등 사회 지향.
- 어린이 운동 — 방정환의 '천도교 소년회'(1921). 어린이날 제정(1923), 잡지 '어린이' 창간(1923).
- 여성 운동 — 근우회(1927), 동덕여학교 등. 신여성 등장.
- 도시 — 일본인·한국인 거주 분리(일본인은 청계천 이남 본정 — 명동·충무로 일대). 도시 빈민(토막민) 증가.
- 농민 — 식민지 지주제 강화로 소작농 비율 급증(1913년 41% → 1932년 53%). 고율 소작료(생산량 50~80%).
- 노동자 — 장시간·저임금. 1920~30년대 노동쟁의 빈발.
- 이주민 — 만주·연해주·일본·하와이·미주로 이주(생계·독립운동).
- 관동 대지진 학살(1923, 일본) — 일본인이 조선인 6천여 명 학살.
문화문화 — 민족 문화 수호
한글 · 국사 연구
- 조선어연구회(1921) → 조선어학회(1931, 이윤재·최현배 등) —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표준어 사정(1936), '우리말 큰사전' 편찬 추진. 조선어학회 사건(1942) — 일제 탄압으로 해산.
- 한글날(가갸날, 1926) 제정.
- 민족주의 사학 — 신채호 '조선사연구초'·'조선상고사'(낭가 사상,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 박은식 '한국통사'(망국 원인), '한국독립운동지혈사' (혼·백 사상). 정인보(얼 사상, '5천년간 조선의 얼').
- 조선학 운동(1930년대) — 정인보·문일평·안재홍 등. '여유당전서' 간행(정약용 사상 재조명).
- 사회경제 사학 —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 마르크스주의 입장. 식민사관(정체성론) 반박.
- 실증주의 사학 — 이병도·손진태 등 진단학회(1934). '진단학보' 발간.
- 식민사관 — 일선동조론, 정체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 → 우리 학자들이 반박.
- 이윤재·최현배·이극로 등 조선어학회 사건 투옥.
문학 · 예술
- 1910년대 — 계몽 문학. 최남선·이광수(2인 문단 시대). 이광수 '무정'(1917, 최초 근대 장편소설).
- 1920년대 — 동인지 시대. '창조'(1919, 김동인 — 순수 문학), '백조'(1922, 낭만주의), '폐허'(1920).
- 신경향파 → 카프(KAPF, 1925,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 사회주의 계열. 임화·박영희 등.
- 민족주의 문학 — 한용운 '님의 침묵'(1926), 김소월 '진달래꽃'(1925),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 1930년대 — 순수 문학(시문학파 — 김영랑, 정지용). 모더니즘(이상 '날개', '오감도'). 농촌·역사 소설(심훈 '상록수', 이광수 '흙').
- 저항 시인 — 이육사 '광야'·'청포도', 윤동주 '서시'·'별 헤는 밤'(후쿠오카 형무소 옥사 1945).
- 친일 문학 — 1930년대 말 ~ 40년대 일부 작가 친일(이광수·서정주·노천명 등).
- 연극 — 토월회(1923) — 신극 운동. 극예술연구회(1931, 유치진).
- 영화 — 나운규 '아리랑'(1926) — 무성 영화. 항일 의식.
- 음악 — 안익태 '코리아 환상곡', 홍난파 '봉선화'.
- 미술 — 이중섭(소), 박수근, 김환기. 안중식·조석진(전통 회화).
- 종교 — 천도교(만세보·개벽), 대종교(만주 항일), 기독교(신사참배 거부 — 주기철 목사 순교), 불교(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 원불교(박중빈 1916, 영광).
- 잡지 — '개벽'(1920, 천도교 — 학술·문예 종합지), '신여성', '어린이', '소년조선일보' 등.
현대 — 대한민국 (1945 ~ 현재)
1945년 8·15 광복 ~ 현재
광복 후 분단·정부 수립·6·25 전쟁을 거쳐,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 권위주의 정권과 4·19, 5·18, 6월 민주항쟁의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정치 발전. 경제 성장과 외환위기, 남북관계 변화가 전개되는 시기.
정치정치 — 광복부터 민주화까지
광복과 분단
- 8·15 광복(1945) — 일본 무조건 항복. 그러나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분할 점령.
- 조선건국준비위원회(1945.8.15, 여운형·안재홍) — 광복 직후 자치 기구. 인민위원회 결성. 좌우 합작 → 후에 좌익 주도로 변화.
- 조선인민공화국 선포(1945.9.6) — 미군정이 부인.
- 미군정(1945.9~1948.8) — 38도선 이남 직접 통치. 인공·임정 모두 부인.
- 북한 — 소련군 + 김일성을 중심으로 인민위원회. 토지 개혁(1946.3, 무상몰수·무상분배).
-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1945.12) — 미·영·소 외상. 최대 5년간 신탁통치 + 미소공동위원회 설치 결정.
- 신탁통치 논쟁 — 우익(김구·이승만 등) 반탁 vs 좌익(처음 반탁 → 1946.1 찬탁으로 전환). 사회 극심한 분열.
- 1차 미소공동위원회(1946.3~5) — 임시정부 협의 대상 두고 결렬.
- 이승만의 정읍 발언(1946.6) —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주장.
- 좌우합작 운동(1946~1947) — 여운형·김규식 주도. 좌우합작 7원칙(토지·친일파·신탁 문제). 미군정 후원하다 1947년 여운형 암살로 좌절.
- 2차 미소공동위원회(1947.5~10) — 결렬.
- 미국이 한국 문제 UN에 이관(1947.9) → UN이 인구비례 총선거 결의(1947.11) → 소련·북한 거부 → UN 소총회가 가능한 지역 선거 결정(1948.2).
- 남북협상(1948.4) — 김구·김규식이 평양 방문, 김일성·김두봉과 회담. 단독 정부 반대. 성과 없이 귀환.
- 제주 4·3 사건(1948.4.3) — 단선 반대·통일 정부 수립 요구. 군경·서북청년단의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 다수 희생(2000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 5·10 총선거(1948.5.10) — 우리나라 최초 보통선거(21세 이상). 제주 일부 무산. 김구·김규식 등 불참.
- 제헌국회 — 헌법 제정(1948.7.17),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선출.
-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8.15). 9월 9일 북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김일성).
- 여수·순천 10·19 사건(1948) — 제주 4·3 진압 명령 거부 → 군내 좌익 봉기.
- 반민특위(1948.10) — 친일파 처단.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비협조·국회 프락치 사건(1949)·반민특위 습격(1949.6) 등으로 좌절.
- 농지개혁(1949 제정 → 1950 시행) — 유상몰수·유상분배(3정보 상한). 지주제 해체.
6·25 전쟁 (1950~1953)
- 배경 — 38도선 갈등 빈발, 애치슨 라인(1950.1, 미국이 한국·대만을 방위선에서 제외 선언), 북한 소련·중국 지원 받아 전쟁 준비.
- 남침(1950.6.25) — 북한군 기습. 3일 만에 서울 함락.
-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8월). UN 안보리 결의로 16개국 UN군 참전(미군 중심).
- 인천 상륙 작전(1950.9.15, 맥아더) → 서울 수복(9.28). 38선 돌파(10.1) → 평양 점령(10.19) → 압록강(10.25).
- 중공군 개입(1950.10) → 1·4 후퇴(1951.1.4, 서울 재함락).
- 다시 서울 수복(1951.3) → 38선 부근에서 전선 교착.
- 휴전 회담(1951.7 ~ 1953.7) — 군사분계선·포로 송환 두고 2년간 지연.
- 이승만 정부 반대(반공 포로 석방, 1953.6) — 1953.7.27 휴전 협정(판문점, UN·북한·중국 서명. 한국 불참).
- 결과 — 사망·실종 약 300만 명, 이산가족·고아, 전 국토 폐허, 분단 고착화.
- 한미상호방위조약(1953.10) — 미군 주둔 근거. 경제·군사 원조 본격화.
이승만 정부와 4·19 혁명
- 발췌 개헌(1952.7, 부산정치파동) —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 6·25 중 헌병·계엄으로 국회의원 위협.
- 사사오입 개헌(1954.11) — 초대 대통령 중임 제한 철폐. 정족수 부족(135.3 → 136 필요)을 '사사오입'(반올림 안 하면 135) 논리로 통과.
- 1956년 대선 — 이승만 당선, 부통령 장면(민주당) 당선. 진보당 조봉암 2위.
- 진보당 사건(1958) — 평화통일 주장한 조봉암 간첩 누명·처형.
- 보안법 파동(1958), 경향신문 폐간(1959) — 언론·반대파 탄압.
- 3·15 부정선거(1960) — 이승만·이기붕 당선 위해 4할 사전투표·3인조·9인조 공개투표·투표함 바꿔치기.
- 마산 시위(1960.3.15) → 김주열 학생 시신 발견(4.11, 눈에 최루탄) → 전국 시위 확산.
- 4·19 혁명(1960.4.19) — 학생·시민 대규모 시위. 4·25 교수단 시국 선언.
- 이승만 하야(4.26) → 미국 망명. 허정 과도 내각.
- 제2공화국(1960.6) — 의원내각제 개헌. 대통령 윤보선, 국무총리 장면(민주당). 자유와 민주 분위기, 그러나 사회 혼란(시위·노동운동 빈발).
- 구파·신파 분당, 통일 운동 활발(중립화·남북협상).
- 5·16 군사정변(1961.5.16) — 박정희 등 군부가 쿠데타. 장면 내각 붕괴. 국가재건최고회의 설치.
박정희 정부와 유신
- 군정(1961~1963) — 정치활동정화법, 부정축재처리법. 중앙정보부 창설(김종필).
- 제3공화국(1963.12) — 대통령 직선제 + 단원제. 박정희 당선(민주공화당). 윤보선과 박빙.
- 한일 협정(1965.6) — 국교 정상화. 무상 3억 + 차관 2억 달러. 6·3 시위(1964, 굴욕 외교 반대) → 계엄.
- 베트남 파병(1964~1973) — 미국 요청. 브라운 각서로 경제 지원 확보. 전투병 30만 명, 사망 5천여 명.
- 3선 개헌(1969.10) — 박정희 3선 가능. 국민투표 통과.
- 1971년 대선 — 박정희가 김대중에게 신승.
- 10월 유신(1972.10.17) — 비상계엄·국회 해산. 유신헌법(11.21 국민투표).
- 유신 체제 — 대통령 간선제(통일주체국민회의), 임기 6년·연임 제한 없음. 긴급조치권. 국회의원 1/3 대통령 추천(유신정우회). 사실상 종신 집권.
- 긴급조치 1~9호(1974~1975) — 유신 헌법 비판 금지 등. 9호는 인권 유린의 절정.
- 민청학련 사건(1974),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5, 8명 사형 — 2007 재심 무죄).
- 유신 반대 운동 — '3·1 민주구국선언'(1976, 윤보선·김대중·함석헌 등).
- YH 무역 사건(1979.8) — 여공들 신민당사 농성, 진압 중 사망.
- 김영삼 의원직 박탈 → 부마 항쟁(1979.10, 부산·마산).
- 10·26 사태(1979.10.26) —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사살.
신군부와 5·18, 6월 항쟁
- 12·12 사태(1979.12.12) —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가 군 장악(하나회 중심).
- 1980년 '서울의 봄' — 민주화 요구 시위 확산.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 신군부 권력 장악.
- 5·18 광주 민주화 운동(1980.5.18~27) — 광주 시민·학생 항쟁. 신군부 무력 진압. 사망·실종 다수. 2011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1980.5) → 전두환이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선출(1980.8).
- 제5공화국(1981.3) — 헌법 개정(대통령 7년 단임, 간선제 — 선거인단). 전두환 당선.
- 강압 통치 — 언론 통폐합(1980), 삼청교육대(1980~1981, 인권 유린), 보도지침(언론 통제).
- 유화책 — 야간 통금 해제(1982), 교복·두발 자율화, 해외여행 자유화(1983), 프로야구 출범(1982), 88올림픽 유치.
-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1987.1) — 서울대생 박종철 남영동 분실에서 사망.
- 4·13 호헌 조치(1987.4.13) — 전두환이 직선제 개헌 거부.
- 이한열 최루탄 사망(1987.6.9) → 6·10 국민대회 → 6월 민주항쟁(1987.6) — 전국 시민·학생 대규모 시위.
- 6·29 선언(1987.6.29, 노태우) — 대통령 직선제 수용. 9차 개헌(현행 헌법) — 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
- 1987년 대선 — 야권 분열(김영삼·김대중) → 노태우 당선(36.6%).
민주화 이후 정부들
- 노태우 정부(1988~1993) — 88서울올림픽, 북방 외교(소련 1990, 중국 1992 수교), 남북한 UN 동시 가입(1991.9), 남북기본합의서(1991.12),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12).
- 3당 합당(1990.1) — 민정당+민주당(김영삼)+공화당(김종필) → 민자당. 거대 여당.
- 김영삼 정부(1993~1998, 문민정부) — 32년 만의 민간인 대통령. 금융실명제(1993.8 긴급명령), 부동산실명제(1995),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1995). 역사 바로 세우기(전두환·노태우 구속 1995). OECD 가입(1996).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1997.11).
- 김대중 정부(1998~2003, 국민의 정부) — 최초의 평화적 정권 교체. IMF 조기 졸업(2001), 외환위기 극복. 남북 정상회담(2000.6, 평양), 6·15 남북공동선언. 노벨 평화상(2000). 한일 월드컵(2002).
- 노무현 정부(2003~2008, 참여정부) — 권위주의 해체, 행정수도 이전 추진(헌재 위헌 → 세종시 행정중심복합도시), 한미 FTA 서명(2007), 2차 남북 정상회담(2007.10), 10·4 선언.
- 이명박 정부(2008~2013) — 4대강 사업, 한미 FTA 발효(2012). 천안함 사건(2010), 연평도 포격(2010), 5·24 조치(2010, 남북 교류 중단).
- 박근혜 정부(2013~2017) — 첫 여성 대통령. 세월호 참사(2014.4.16), 메르스(2015), 한일 위안부 합의(2015 — 후 무효화 논란), 개성공단 폐쇄(2016), 사드 배치(2016).
- 촛불 시위 → 박근혜 탄핵(2016.12 국회 → 2017.3 헌재 인용).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
- 문재인 정부(2017~2022) — 3차 남북 정상회담(2018.4 판문점, 9월 평양), 판문점 선언, 9·19 군사합의. 북미 정상회담(2018.6 싱가포르, 2019.2 하노이).
- 윤석열 정부(2022~) — 한·미·일 협력 강화, 부동산·노동 정책 등.
남북관계 주요 사건
- 1·21 사태(1968) — 북한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시도. 푸에블로호 납치(1968), 울진·삼척 침투(1968).
- 7·4 남북공동성명(1972) —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3원칙. 그러나 양측 모두 독재 강화에 이용.
- 남북 적십자 회담(1971~) — 이산가족 문제.
-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단(1985) — 최초 상호 방문.
- 남북기본합의서(1991.12) — '잠정적 특수관계' 규정.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12).
- 남북 정상회담 1차(2000.6.15, 김대중-김정일) — 6·15 남북공동선언.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이산가족 상봉.
- 2차(2007.10, 노무현-김정일) — 10·4 선언.
- 3차·4차·5차(2018, 문재인-김정은) —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공동선언, 군사 합의.
- 북한 핵 문제 — 1차 위기(1993~1994, 제네바 합의), 2차 위기(2002~), 1차 핵실험(2006), 6자 회담, 핵·미사일 시험 반복, 북미 정상회담(2018·2019).
경제경제 — 성장과 위기
경제 성장 과정
- 1950년대 — 미국 원조 경제. 삼백 산업(밀가루·설탕·면방직) 중심. 1957년 ~ 미국 무상 원조 → 유상 차관으로 전환.
- 1962~1981 — 경제 개발 5개년 계획(박정희).
- 1·2차(1962~1971) — 경공업(섬유·신발·가발) 중심. 수출 주도. 베트남 특수, 한일 협정 자금 활용.
- 경부고속도로 개통(1970.7).
- 3·4차(1972~1981) — 중화학 공업(철강·조선·기계·전자·석유화학) 집중 육성. 포항제철(1973), 울산·창원·여수 산업단지.
- 수출 100억 달러 달성(1977).
- 1970년대 — 두 차례 오일 쇼크(1973, 1979). 중동 건설 붐으로 극복.
- 새마을 운동(1970~) — 농촌 근대화. '근면·자조·협동'. 농촌 환경 개선, 그러나 유신 체제 정당화 도구로도 활용.
- 1980년대 — 3저 호황(저유가·저달러·저금리, 1986~1988) → 첫 무역 흑자.
- 1990년대 — OECD 가입(1996), 1인당 GNP 1만 달러 돌파(1995). 외환위기(1997.11) → IMF 구제금융 195억 달러. 기업·금융 구조조정, 대량 실업.
- 금 모으기 운동(1998) — 외채 갚기. 2001.8 IMF 차관 조기 상환.
- 2000년대 — 한일 월드컵(2002), 한미 FTA(2007 서명, 2012 발효), 한·EU FTA(2011).
- 2010년대 — 글로벌 금융 위기 비교적 빨리 극복. 1인당 GNI 3만 달러(2017).
- 현재 —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 K-콘텐츠·반도체·자동차·조선 강국.
노동·농민·도시 문제
- 전태일 분신(1970.11.13, 평화시장) —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 운동의 출발점.
- 1970년대 — YH무역 노동자 신민당사 농성(1979), 동일방직 사건(1978).
- 1980년대 — 노동자 대투쟁(1987.7~9, 6월 항쟁 직후) — 노조 결성·임금 인상 폭발.
- 이농 현상 — 1960~70년대 농촌 인구 도시로 대량 이주. 도시 빈민(판자촌), 농촌 공동화.
- 광주 대단지 사건(1971) — 서울 빈민 강제 이주에 항거.
- 농민 운동 — 함평 고구마 사건(1976), 1980년대 농민회 조직.
- 외환위기 후 — 비정규직 확대, 양극화. 정리해고제·파견근로제 도입(1998).
사회사회 — 시민 사회의 성장
사회 변화
- 교육 — 의무교육 시행(1950~, 초등). 중학교 무시험 진학(1969), 고교 평준화(1974). 대학 진학률 급증.
- 여성 — 호주제 폐지(2008). 여성 교육·사회 진출 확대. 가족관계등록부.
- 복지 — 의료보험(1977 일부 → 1989 전국민), 국민연금(1988), 고용보험(1995). 국민기초생활보장법(1999).
- 시민 운동 — 1987 이후 시민 단체 폭발적 증가. 환경·여성·인권·평화 운동.
- 통신·미디어 — 1990년대 PC통신 → 인터넷(1990년대 후반) → 스마트폰(2010 이후).
- 한류 — 2000년대 이후 K-드라마·K-pop·영화 세계적 확산.
- 재일·재중·재미·고려인 등 해외 동포 사회.
- 다문화 사회 — 외국인 노동자·결혼 이주민 증가(2000년대 ~).
- 고령화 사회 진입(2000) → 고령 사회(2017) → 초고령 사회(2024 예상).
- 저출생 — 합계출산율 1.0 이하(2018 ~).
문화문화 — 분단과 현대 문화
교육·언론·예술
- 광복 직후 — 한글 전용 운동(이극로·최현배 등 조선어학회 출소 인사 중심).
- 교육 — 미국식 6·3·3·4학제 도입(1949). 국민교육헌장 선포(1968) → 비판으로 1994 사실상 폐기.
- 문학 — 분단·전쟁 문학(황순원 '카인의 후예', 최인훈 '광장'), 4·19 이후 참여 문학(김수영·신동엽), 1970년대 민중 문학(황석영 '객지', 조세희 '난쏘공').
- 1980년대 — 광주 항쟁 문학(임철우 '봄날'). 1990년대 이후 — 다양화, 페미니즘·디아스포라 문학.
- 영화 — 1960년대 황금기('오발탄', '하녀'), 70~80년대 침체, 90년대 후반 르네상스(임권택, 박찬욱, 봉준호). '기생충' 아카데미 작품상(2020), '오징어 게임'(2021).
- 음악 — 1960~70년대 통기타·청년 문화(김민기·양희은). 1980년대 — 민중 가요. 1990년대 — 댄스·발라드. 2000년대 ~ K-pop 글로벌화(보아·동방신기·소녀시대·BTS·블랙핑크).
- 언론 — 언론 자유 — 1960년대 부분 자유 → 유신·5공 통제 → 1987 이후 자유화. 인터넷 언론 등장(2000년대).
- 전통 문화 보전 — 무형문화재 제도(1962), 인간문화재. 문화재 환수 운동(외규장각 도서 2011, 조선왕조의궤 2011).
- 유네스코 세계유산 — 종묘(1995), 해인사 장경판전(1995), 석굴암·불국사(1995), 창덕궁(1997), 수원 화성(1997), 경주 역사지구(2000), 고인돌(2000),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조선 왕릉(2009), 한국의 역사 마을(하회·양동, 2010), 남한산성(2014), 백제역사지구(2015),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 서원(2019), 한국의 갯벌(2021), 가야 고분군(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