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총정리 — 양란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붕당에서 탕평, 세도정치로 이어지는 정치사와 대동법·균역법·모내기법이 바꾼 경제·사회를 한 축으로 묶었습니다. 실학과 서학·동학까지 조선 후기 빈출 구간을 정리했습니다.

조선 후기는 한능검에서 매 회 7~9문항이 나오는 최대 격전지입니다. 붕당 이름이 계속 갈라지고, 세법 이름이 비슷하고, 실학자 이름이 스무 명 가까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모든 변화에는 공통된 출발점이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입니다. 두 전쟁으로 나라의 살림과 신분 질서가 무너졌고, 그것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를 두고 정치·경제·사상이 전부 움직입니다.

정치 — 붕당에서 세도정치까지

큰 흐름은 세 단계입니다.

붕당 정치(선조~숙종)  →  탕평 정치(영조·정조)  →  세도 정치(순조~철종)

붕당의 갈래

선조 때 이조전랑 자리를 두고 동인과 서인이 갈립니다. 이후 계속 갈라집니다.

동인 ┬ 남인 (온건, 이황 계열)
     └ 북인 (강경, 조식 계열)
서인 ┬ 노론 (송시열, 대의명분)
     └ 소론 (윤증, 실리)

갈등이 폭발한 두 사건이 시험에 고정 출제됩니다.

  • 예송논쟁(현종) — 효종과 효종비의 상에 자의대비가 몇 년 상복을 입을 것인가. 표면은 예법이지만 실제는 왕권의 성격을 둘러싼 다툼입니다. 1차(기해예송)는 서인, 2차(갑인예송)는 남인이 이겼습니다.
  • 환국(숙종) — 집권 붕당이 통째로 바뀌는 정치 격변입니다. 경신환국 → 기사환국 → 갑술환국 순서로 남인과 서인이 번갈아 몰락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 붕당을 아예 죽이는 일당 전제화가 굳어집니다.

탕평 — 왕이 균형을 잡겠다

정책
영조 탕평비 건립, 서원 정리, 이조전랑의 후임 추천권 폐지, 균역법, 『속대전』, 신문고 부활, 사형수 삼심제
정조 규장각 설치, 초계문신제, 장용영 설치, 수원 화성 축조, 신해통공(금난전권 폐지), 『대전통편』

영조의 탕평은 온건파를 고루 쓰는 완론 탕평, 정조는 옳고 그름을 가려 쓰는 준론 탕평으로 구분합니다.

세도 정치

정조 사후 순조·헌종·철종 3대 60여 년간 안동 김씨·풍양 조씨 등 외척이 권력을 독점합니다.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삼정(전정·군정·환곡) 이 문란해집니다. 그 결과가 농민 봉기입니다.

  • 홍경래의 난(1811) — 평안도 지역 차별에 대한 반발. 몰락 양반 홍경래가 주도하고 상인·광산 노동자가 합류했습니다.
  • 임술 농민 봉기(1862) — 진주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집니다. 정부는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으나 성과가 없었습니다.

경제 — 세 개의 세법과 하나의 농법

조선 후기 경제 문항은 사실상 이 넷으로 압축됩니다.

제도 내용
영정법 인조 전세를 풍흉과 무관하게 1결당 4두로 고정
대동법 광해군~숙종 공납을 토지 1결당 쌀 12두로 전환. 100년에 걸쳐 전국 확대
균역법 영조 군포를 2필 → 1필로 감축. 부족분은 결작·선무군관포·어염선세로 보충

대동법이 가장 중요합니다. 집집마다 특산물을 내던 공납을 토지 기준으로 바꾼 것이라, 땅 없는 농민의 부담이 크게 줄고 땅 많은 지주는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시작해 숙종 때에야 전국으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이 제도가 예상 밖의 결과를 낳습니다. 관청이 필요한 물건을 시장에서 사들이게 되면서 공인이라는 어용상인이 등장하고, 이들이 상품 화폐 경제를 끌어올립니다.

농업에서는 모내기법(이앙법) 의 전국 확대가 결정적입니다.

  • 김매기 노동력이 줄어 한 사람이 부칠 수 있는 땅이 넓어집니다(광작).
  • 벼와 보리의 이모작이 가능해집니다.
  • 광작으로 부농이 생기는 한편, 땅을 잃은 농민은 임노동자나 도시 빈민이 됩니다.

여기에 인삼·담배·면화 같은 상품 작물 재배가 늘고, 상업에서는 사상이 성장합니다. 개성 송상, 의주 만상, 동래 내상, 경강상인이 대표적입니다. 신해통공으로 금난전권이 폐지되면서 사상의 활동은 더 활발해집니다. 화폐로는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됩니다.

사회 — 신분제가 흔들리다

경제 변화는 곧 신분 변화로 이어집니다.

  • 양반의 분화 — 권력을 쥔 권반, 향촌의 향반, 몰락한 잔반으로 갈립니다.
  • 중인의 신분 상승 운동 — 서얼의 통청 운동, 기술직 중인의 소청 운동.
  • 노비의 감소 — 납속과 공명첩으로 신분을 사고, 도망이 늘면서 순조 때 공노비 6만여 명이 해방(1801)됩니다.

향촌에서는 기존 사족(구향)과 새로 부를 쌓은 부농층(신향)이 향촌 주도권을 두고 다툽니다(향전).

사상 — 실학·서학·동학

실학

실학자는 무엇을 개혁하자고 했는지로 두 갈래만 나누면 충분합니다.

갈래 관심 대표 인물과 주장
중농학파(경세치용) 토지 제도 유형원 균전론, 이익 한전론(영업전), 정약용 여전론·정전론
중상학파(이용후생·북학파) 상공업·기술 유수원 『우서』, 홍대용 『의산문답』(지전설), 박지원 『열하일기』(수레·화폐), 박제가 『북학의』(소비 강조)
  • 정약용 —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거중기(수원 화성), 배다리. 실학의 집대성자로 출제 빈도가 가장 높습니다.
  • 박제가 — "재물은 우물과 같아서 쓸수록 채워진다"는 소비 권장론이 선지로 그대로 나옵니다.

국학 연구도 함께 나옵니다. 안정복 『동사강목』, 유득공 『발해고』(발해를 우리 역사로), 이중환 『택리지』, 김정호 대동여지도, 신경준·정상기의 지도.

서학과 동학

  • 서학(천주교) — 청에서 서적으로 들어와 남인 계열 학자가 신앙으로 받아들입니다. 제사 거부와 평등 사상 때문에 탄압받습니다 (신해박해·신유박해·기해박해·병인박해).
  • 동학 — 1860년 최제우가 창시.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을 내세워 신분 질서를 부정했습니다. 최제우는 혹세무민 죄로 처형되고, 2대 교주 최시형이 『동경대전』·『용담유사』를 정리해 교단을 재건합니다.

문화 — 서민 문화의 등장

경제력이 생긴 서민이 문화의 주체가 됩니다. 한글 소설(『홍길동전』·『춘향전』), 사설시조, 판소리, 탈춤(가면극), 그리고 풍속화입니다.

화가 특징
정선 진경산수화 —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김홍도 서민의 생활 — 씨름, 서당, 무동
신윤복 양반과 여성, 도시의 풍류 — 단오풍정, 미인도
김정희 세한도, 추사체, 『금석과안록』(북한산비 고증)

여기서 틀립니다

선지 실제 주인공
대동법을 처음 실시하였다 광해군(경기도)
균역법을 실시하였다 영조
규장각·장용영을 설치하였다 정조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정조(신해통공)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철종(임술 농민 봉기 이후)
『목민심서』를 저술하였다 정약용
『북학의』에서 소비를 권장하였다 박제가
동학을 창시하였다 최제우
사창제를 실시하였다 흥선대원군(개항기)
척화비를 세웠다 흥선대원군(개항기)

마지막 두 줄처럼 흥선대원군 시기 정책이 조선 후기 문항의 오답으로 자주 섞입니다. 1863년을 경계로 갈라 두세요.

이렇게 연습하세요

조선 후기는 정치사와 경제사를 분리해서 공부하는 편이 낫습니다. 붕당·환국·탕평은 연표로, 대동법·균역법·모내기법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라는 인과로 잡는 식입니다. 실학자는 중농이냐 중상이냐 한 번만 갈라 두면 세부는 따라옵니다.

이어지는 시대는 개항기·대한제국 정리에서 다룹니다. 전체 흐름은 시대별 요약 정리, 실전은 기출 문제풀이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