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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도구를 처음 사용한 시대이고 비파형 동검을 거푸집으로 만든다고 했으므로 (가)는 청동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만들었습니다.
- ①우경이 널리 보급된 것은 고려 시대입니다.
- ②철제 농기구 사용은 철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 ③동굴이나 막집 생활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 ④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만든 것이 청동기 시대입니다.
읍군·삼로가 다스리고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으며 책화·족외혼의 풍습과 단궁·반어피·과하마 특산물이 있는 나라는 동예입니다.
- ①무천·책화·단궁이 있던 나라가 동예입니다.
- ②부여는 영고와 사출도가 있던 나라입니다.
- ③삼한은 소도와 천군이 있던 지역입니다.
- ④옥저는 민며느리제와 가족 공동 무덤이 있던 나라입니다.
4세기 중반 마한을 복속하고 동진·왜와 교류한 왕은 근초고왕입니다. 근초고왕은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습니다(371).
- ①사비 천도는 성왕 때의 일입니다.
- ②22담로 설치는 무령왕 때의 일입니다.
- ③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것이 근초고왕입니다.
- ④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 때 시행되었습니다.
4번살수 대첩과 안시성 싸움 사이의 사실
정답 ② · 2점살수 대첩(612)과 안시성 싸움(645) 사이의 일을 묻습니다. 642년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보장왕을 세우고 대막리지가 되어 권력을 잡았습니다.
- ①김흠돌의 반란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681)의 일입니다.
- ②연개소문의 정변(642)이 두 전투 사이의 일입니다.
- ③장문휴의 산둥반도 공격은 발해 무왕 때(732)의 일입니다.
- ④검모잠의 고구려 부흥 운동은 670년 이후의 일입니다.
혈통에 따라 관직 진출은 물론 집의 크기와 옷차림 같은 일상생활까지 제한한 신라의 신분 제도는 골품 제도입니다.
- ①혈통으로 신분을 나눈 신라의 제도가 골품 제도입니다.
- ②기인 제도는 고려가 호족을 견제하려 둔 제도입니다.
- ③음서 제도는 고위 관료의 자손을 관직에 올린 제도입니다.
- ④상수리 제도는 통일 신라가 지방 세력을 견제한 제도입니다.
신라 선덕여왕 때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고 기단 위 모퉁이에 사자상이 놓인 경주의 국보는 분황사 모전 석탑입니다.
- ①선덕여왕 때 벽돌 모양 돌로 쌓은 탑이 분황사 모전 석탑입니다.
- ②정림사지 오층 석탑은 백제의 석탑입니다.
- ③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은 고려의 석탑입니다.
- ④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의 석탑입니다.
진성왕 3년(889)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일으킨 반란입니다. 연표에서 혜공왕 피살(780)과 고려 건국(918) 사이인 (라)에 해당합니다.
- ①나제 동맹 성립(433)~진흥왕의 대가야 병합(562) 사이입니다.
- ②대가야 병합(562)~신라 삼국 통일(676) 사이입니다.
- ③삼국 통일(676)~혜공왕 피살(780) 사이입니다.
- ④혜공왕 피살(780)~고려 건국(918) 사이로, 889년 원종과 애노의 난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후백제를 세우고 아들 신검에게 금산사에 갇힌 인물은 견훤입니다. 견훤은 927년 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을 크게 이겼습니다.
- ①청해진을 설치한 인물은 장보고입니다.
- ②국호를 마진으로 한 인물은 궁예입니다.
- ③경주의 사심관이 된 인물은 경순왕 김부입니다.
- ④공산 전투에서 고려에 이긴 것이 견훤입니다.
대조영의 동모산 건국과 선왕(대인수) 대의 해동성국이 나오므로 이 나라는 발해입니다. 중국 지린성의 영광탑은 발해의 전탑입니다.
- ①영광탑이 발해의 문화유산입니다.
- ②금관총 금관은 신라의 유물입니다.
- ③금동 대향로는 백제의 유물입니다.
- ④판갑옷과 투구는 가야의 유물입니다.
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쓰고 노비안검법과 관리 복색을 정한 왕은 광종입니다. 광종은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 ①강화도 천도는 최우가 주도한 일입니다.
- ②쌍성총관부 수복은 공민왕의 일입니다.
- ③12목 설치는 성종의 정책입니다.
- ④과거제를 처음 시행한 것이 광종입니다.
여진이 고려에 조공하던 현종 무렵과 금의 사대 요구를 받아들인 인종·이자겸 시기 사이의 일을 묻습니다. 여진에게 패한 뒤 숙종 때 윤관이 별무반 설치를 건의했습니다(1104).
- ①박위의 대마도 정벌은 고려 말(1389)의 일입니다.
- ②윤관의 별무반 설치 건의(1104)가 두 장면 사이의 일입니다.
- ③김윤후의 처인성 승리는 몽골 침입 때(1232)입니다.
- ④김춘추의 나당 동맹은 삼국 시대의 일입니다.
고려 숙종 때 화폐를 만들려 설치한 주전도감에서 찍어 낸 화폐는 해동통보입니다.
- ①명도전은 철기 시대 중국과의 교역을 보여 주는 화폐입니다.
- ②당백전은 흥선 대원군이 발행한 고액 화폐입니다.
- ③백동화는 개항기 전환국에서 발행한 화폐입니다.
- ④주전도감에서 만든 화폐가 해동통보입니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략을 물리치려 만들었고 강화도에서 합천 해인사로 옮겨 보관 중인 (가)는 팔만대장경판입니다.
- ①초조대장경은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려 만든 것으로 몽골 침입 때 불탔습니다.
- ②직지심체요절은 청주 흥덕사에서 찍은 금속 활자본입니다.
- ③몽골 침략을 물리치려 만들어 해인사에 있는 것이 팔만대장경판입니다.
- ④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불국사 삼층 석탑에서 나온 목판 인쇄물입니다.
묘청의 난(1135)과 만적의 난(1198) 사이의 장면을 고르는 문항입니다. 1170년 정중부 등이 무신 정변을 일으켜 문신을 제거했습니다.
- ①정중부의 무신 정변(1170)이 두 사건 사이의 장면입니다.
- ②최무선의 진포 대첩은 1380년의 일입니다.
- ③강감찬의 흥화진·귀주 전투는 1018~1019년의 일입니다.
- ④배중손의 진도 용장성 항전은 1270년 이후의 일입니다.
후삼국을 통일하고 발해 유민까지 받아들인 '이 왕'은 태조 왕건입니다. 태조는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흑창을 만들었습니다.
- ①흑창을 만든 것이 태조 왕건입니다.
- ②천리장성 축조는 고려 덕종~정종 대의 일입니다.
- ③전민변정도감 설치는 공민왕의 일입니다.
- ④전시과를 처음 시행한 왕은 경종입니다.
발립을 쓴 관리와 변발·호복 차림의 무사가 유행한 '이 시기'는 원 간섭기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은 신라 선덕여왕 때의 일입니다.
- ①응방 관리는 원 간섭기에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 ②원에 공녀로 끌려가는 여인도 원 간섭기의 모습입니다.
- ③황룡사 구층 목탑을 세우는 목공은 신라 때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 ④권문세족에게 땅을 빼앗기는 농민은 원 간섭기의 모습입니다.
요동 정벌은 무리라며 4불가론을 편 인물은 이성계입니다. 이성계는 1380년 황산에서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 ①강동 6주를 얻은 인물은 서희입니다.
- ②비격진천뢰를 만든 인물은 이장손입니다.
- ③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친 것이 이성계입니다.
- ④매소성 전투를 이끈 것은 신라군입니다.
최윤덕과 김종서를 보내 4군 6진을 개척한 왕은 세종입니다. 세종 때에는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한 역법서 칠정산이 편찬되었습니다.
- ①비변사 폐지는 흥선 대원군의 조치입니다.
- ②칠정산을 편찬한 것이 세종입니다.
- ③동의보감 간행은 광해군 때의 일입니다.
- ④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때의 일입니다.
6조 직계제·호패법·사간원 독립 같은 정치 개혁과 계미자·신문고·창덕궁·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함께 나오는 왕은 태종입니다.
- ①6조 직계제와 호패법, 계미자로 정리되는 왕이 태종입니다.
- ②세조는 단종을 몰아내고 직전법을 시행한 왕입니다.
- ③중종은 조광조를 등용했다가 기묘사화를 일으킨 왕입니다.
- ④영조는 탕평책과 균역법을 편 왕입니다.
방납의 폐단을 막고자 별도의 관청(선혜청)을 두고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옷감·동전으로 내게 한 제도는 대동법입니다.
- ①균역법은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제도입니다.
- ②공납을 토지 기준으로 쌀·베·동전으로 바꾼 것이 대동법입니다.
- ③영정법은 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한 제도입니다.
- ④직전법은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준 제도입니다.
진주성·한산도 앞바다·동래읍성이 나오므로 (가)는 임진왜란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임경업의 백마산성 항전은 병자호란 때의 일입니다.
- ①조헌의 금산 의병은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 ②임경업의 백마산성 항전은 병자호란 때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 ③곽재우의 정암진 승리는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 ④신립의 탄금대 전투는 임진왜란 초기의 일입니다.
22번명청 교체기 조선의 대외 관계
정답 ② · 3점(가) 강홍립 부대의 후금 파병(1619) → (다) 인조의 삼전도 항복(1637) → (나) 나선 정벌 조총 부대 파견(1654) 순입니다.
- ①(가)-(나)-(다) 순은 아닙니다.
- ②(가) 강홍립 파병 → (다) 삼전도 항복 → (나) 나선 정벌 순이 맞습니다.
- ③(나)-(가)-(다) 순은 아닙니다.
- ④(다)-(나)-(가) 순은 아닙니다.
명종 즉위 후 외척인 대윤(윤임)과 소윤(윤원형)의 다툼으로 사림이 화를 입은 사건은 1545년 을사사화입니다.
- ①경신환국은 1680년 숙종 때의 일입니다.
- ②기해예송은 1659년 현종 때의 일입니다.
- ③병인박해는 1866년의 천주교 탄압입니다.
- ④명종 즉위 후 외척 다툼으로 일어난 것이 을사사화입니다.
겸재 정선의 작품을 고르는 문항입니다. 인왕제색도는 비 갠 뒤의 인왕산을 그린 정선의 대표적 진경산수화입니다.
- ①영통동구도는 강세황의 작품입니다.
- ②인왕제색도가 겸재 정선의 작품입니다.
- ③세한도는 김정희의 문인화입니다.
- ④몽유도원도는 안견의 작품입니다.
상평통보가 전국에 유통된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벽란도의 국제 무역은 고려 시대의 모습입니다.
- ①장시가 전국 각지에서 열린 것은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②공인의 활동은 대동법 시행 이후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③송상이 송방을 둔 것도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 ④벽란도의 국제 무역은 고려 시대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초계문신제를 시행하고 규장각 관원과 시를 지은 '이 왕'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창설했습니다.
- ①경복궁 중건은 흥선 대원군의 일입니다.
- ②영선사 파견은 1881년 고종 때의 일입니다.
- ③장용영을 창설한 것이 정조입니다.
- ④훈민정음 창제는 세종의 일입니다.
홍경래가 주도하고 관군이 정주성을 포위한 '사건'은 1811년 홍경래의 난입니다. 평안도 등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 ①보국안민·제폭구민을 내건 것은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 ②한성 조약은 갑신정변의 결과입니다.
- ③서북 지역민 차별에 반발해 일어난 것이 홍경래의 난입니다.
- ④선혜청과 일본 공사관을 공격한 것은 임오군란입니다.
강화도와 영종도 일대에서 일본이 일으켰고 이를 빌미로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가 체결되는 계기가 된 사건은 1875년 운요호 사건입니다.
- ①강화도 조약의 빌미가 된 것이 운요호 사건입니다.
- ②105인 사건은 1911년 신민회를 해체시킨 조작 사건입니다.
- ③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평양에서 일어났습니다.
- ④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1868년의 일입니다.
구식 군인들이 일으켰고 흥선 대원군이 재집권해 통리기무아문과 별기군을 없앴다가 청군에 납치된 '변란'은 1882년 임오군란입니다.
- ①갑신정변은 1884년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사건입니다.
- ②신미양요는 1871년 미군의 침입입니다.
- ③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것이 임오군란입니다.
- ④임술 농민 봉기는 1862년의 농민 항쟁입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인물은 안중근입니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서 동양 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 ①중광단을 결성한 것은 대종교 계열 인사들입니다.
- ②독립 의군부를 조직한 인물은 임병찬입니다.
- ③동양 평화론을 집필한 것이 안중근입니다.
- ④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인물은 장지연입니다.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이 망명 생활과 신흥 강습소 설립 과정을 기록한 책이므로 (가)는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입니다.
- ①충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마지막 청사가 있던 곳입니다.
- ②이회영 일가가 망명해 신흥 강습소를 세운 곳이 서간도입니다.
- ③하와이는 대조선 국민 군단이 조직된 곳입니다.
- ④멕시코는 숭무 학교가 세워진 곳입니다.
토지 조사 사업을 위한 사무원 모집 공고이므로 1910년대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인에게만 태형을 적용하는 조선 태형령을 시행했습니다.
- ①농광 회사는 1904년 우리 민족이 세운 회사입니다.
- ②조선 태형령 시행이 1910년대 일제의 정책입니다.
- ③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부터 실시되었습니다.
- ④화폐 정리 사업은 1905년 메가타가 주도했습니다.
영국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신민회를 조직했으며 임시 정부에서도 활동한 인물은 양기탁입니다.
- ①김원봉은 의열단과 조선 의용대를 이끈 인물입니다.
- ②나석주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원입니다.
- ③신익희는 임시 정부와 제헌 국회에서 활동한 정치인입니다.
- ④베델과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인물이 양기탁입니다.
한성 전기 회사가 전기를 공급해 전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1899년입니다. 그 뒤인 1905년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 ①한성순보 발간은 1883~1884년의 일입니다.
- ②만민 공동회는 1898년에 열렸습니다.
- ③경부선 철도 개통식(1905)이 전차 개통 이후의 모습입니다.
- ④동문학은 1883년에 세워진 외국어 교육 기관입니다.
봉오동 전투와 간도 참변 사이에 들어가고 독립군 연합 부대가 백운평·어랑촌 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싸움은 1920년 청산리 전투입니다.
- ①영릉가 전투는 1932년 조선 혁명군의 승리입니다.
- ②백운평·어랑촌 전투가 포함된 것이 청산리 전투입니다.
- ③흥경성 전투는 조선 혁명군이 벌인 싸움입니다.
- ④대전자령 전투는 한국 독립군이 벌인 싸움입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세워졌고 충칭에 청사를 둔 (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임시 정부는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 ①독립문을 세운 단체는 독립 협회입니다.
- ②서전서숙을 세운 인물은 이상설입니다.
- ③대한국 국제를 반포한 것은 대한 제국입니다.
- ④한국광복군을 창설한 것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1931년 한인 애국단 제1호 단원이 된 이봉창은 이듬해 도쿄에서 일왕의 행렬을 향해 폭탄을 던졌습니다.
- ①도쿄에서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것이 이봉창입니다.
- ②훙커우 공원 의거는 윤봉길이 일으켰습니다.
- ③이완용을 습격한 인물은 이재명입니다.
- ④스티븐스를 사살한 인물은 장인환·전명운입니다.
고종이 경운궁으로 돌아와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 제국으로 선포한 뒤의 일을 묻습니다. 대한 제국은 양전 사업을 벌여 토지 소유자에게 지계를 발급했습니다.
- ①지계 발급이 대한 제국 시기의 일입니다.
- ②척화비 건립은 1871년의 일입니다.
- ③육영 공원 설립은 1886년의 일입니다.
- ④군국기무처 설치는 1894년의 일입니다.
39번민족 말살 통치기의 모습
정답 ④ · 3점중일 전쟁 이후 창씨개명을 강요한 '이 시기'는 민족 말살 통치기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회사령 공포는 1910년의 일입니다.
- ①공출을 독려하는 애국반 반장은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 ②황국 신민 서사 암송도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 ③국민 징용령(1939)에 끌려가는 청년도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 ④회사령 공포는 1910년이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1927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힘을 합쳐 만든 여성 운동 단체이고 신간회의 자매 단체인 곳은 근우회입니다.
- ①1927년 창립된 신간회의 자매 여성 단체가 근우회입니다.
- ②보안회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막은 단체입니다.
- ③송죽회는 평양에서 조직된 비밀 여성 단체입니다.
- ④색동회는 방정환 등이 만든 어린이 운동 단체입니다.
1987년 호헌 철폐·독재 타도를 외쳐 대통령 직선제 개헌 약속(6·29 민주화 선언)을 이끌어 낸 '이 민주화 운동'은 6월 민주 항쟁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의 희생이 항쟁을 키웠습니다.
- ①유신 체제 붕괴의 계기가 된 것은 부마 민주 항쟁입니다.
- ②양원제 국회가 출현한 것은 4·19 혁명 이후입니다.
- ③박종철과 이한열의 희생으로 확산된 것이 6월 민주 항쟁입니다.
- ④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것은 5·18 민주화 운동입니다.
호가 우사이고 파리 강화 회의에 신한 청년당 대표로 파견되었으며 임시 정부 부주석과 남북 협상에 참여한 인물은 김규식입니다. 그는 여운형과 좌우 합작 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 ①대성 학교를 세운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 ②조선 혁명 선언을 쓴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 ③좌우 합작 위원회를 결성한 것이 김규식입니다.
- ④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지은 인물은 박은식입니다.
1·4 후퇴가 나오므로 (가)는 6·25 전쟁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항으로,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은 1948년으로 전쟁 이전의 일입니다.
- ①흥남 철수는 1950년 12월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②발췌 개헌안 통과는 1952년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③인천 상륙 작전은 1950년 9월 전쟁 중의 일입니다.
- ④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은 1948년이므로 전쟁 중의 일이 아닙니다.
새마을 운동, 광주 대단지 사건,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은 모두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 경부 고속 도로를 준공했습니다.
- ①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1949)의 일입니다.
- ②경부 고속 도로 준공(1970)이 박정희 정부의 일입니다.
- ③금융 실명제 전면 실시는 김영삼 정부(1993)의 일입니다.
- ④OECD 가입은 김영삼 정부(1996)의 일입니다.
45번김대중 정부의 통일 정책
정답 ③ · 2점정주영의 소 떼 방북, IMF 구제 금융 조기 상환, 한일 월드컵 개최는 모두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에서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 ①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은 노태우 정부(1991)의 일입니다.
- ②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노태우 정부(1991)의 일입니다.
- ③6·15 남북 공동 선언 발표가 김대중 정부의 일입니다.
- ④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은 전두환 정부(1985)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나라 동쪽 끝에 있고 1900년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로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한 '이 섬'은 독도입니다.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받았습니다.
- ①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지은 곳은 흑산도입니다.
- ②하멜 일행이 표류해 닿은 곳은 제주도입니다.
- ③이종무가 정벌한 섬은 쓰시마섬입니다.
- ④안용복이 일본에서 우리 영토임을 확인받은 섬이 독도입니다.
#독도#대한 제국 칙령 제41호#안용복#울릉도 왕실이나 국가의 중대한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기록물은 의궤입니다. 정조의 수원 화성 행차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 ①국가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 의궤입니다.
- ②경국대전은 조선의 기본 법전입니다.
- ③삼강행실도는 유교 윤리를 담은 교화서입니다.
- ④조선왕조실록은 왕별로 정리한 편년체 역사서입니다.
미추홀이라고도 불렸고 개항 후 일본 제일은행 지점과 제물포 구락부가 있던 고장은 인천입니다.
- ①군산은 일제 강점기 쌀 반출 항구로 알려진 곳입니다.
- ②마산은 3·15 의거가 일어난 곳입니다.
- ③목포는 개항장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 ④미추홀이라 불리고 제물포 구락부가 있는 곳이 인천입니다.
#인천#미추홀#제물포#개항장#제일은행 지점
무애가로 불교 대중화에 힘쓴 (가) 원효는 십문화쟁론을 지어 여러 종파의 대립을 아우르려 했습니다. 나머지는 인물과 활동이 서로 맞지 않습니다.
- ①원효가 십문화쟁론을 지은 것이 맞습니다.
- ②해동 천태종을 연 인물은 의천이라 혜초와 맞지 않습니다.
- ③세속 5계를 지은 인물은 원광이라 지눌과 맞지 않습니다.
- ④수선사 결사를 제창한 인물은 지눌이라 유정과 맞지 않습니다.
(다) 고구려의 태학·경당 → (나) 고려 숙종 때 국자감 서적포 설치 → (가) 조선의 성균관·4부 학당 순입니다.
- ①(가)-(나)-(다) 순은 아닙니다.
- ②(가)-(다)-(나) 순은 아닙니다.
- ③(나)-(가)-(다) 순은 아닙니다.
- ④(다) 태학·경당 → (나) 국자감 서적포 → (가) 성균관·4부 학당 순이 맞습니다.